프로 12년차 백업 조중근이 등번호 6번 바꾼 사연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3-29 00:52 | 최종수정 2012-03-29 06:26


지난해 6월2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벌어진 두산-넥센전. 넥센 조중근이 3회 2사 2루에서 우중간 적시타를 터트리고 있는 모습. 스포츠조선 DB

1982년 생, 좌투좌타, 올 해 우리나이 서른 한 살. 2001년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고 SK 와이번즈 유니폼을 입었으니 프로 12년차 베테랑이다. 2007년 시즌 중반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했는데, 조중근은 여전히 좌익수와 1루수, 지명타자, 왼손 대타를 오가는 연봉 4300만원을 받는 백업선수다.

2001년 프로에 발을 디뎠지만 2002년까지 2년 간 기록이 없다. 2년 동안 2군에 처박혀 1군 경기에 단 1게임도 출전하지 못했다. 지난 9년 간 341경기에 나서 통산타율 2할4푼4리(586타수 143안타). 341경기에 출전했는데도 타수가 586에 불과한데서 알수 있듯이 주로 대타로 나섰다. 프로 12년 차 베테랑 백업요원에게 사연이 없을 리 없다.

그동안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주전의 꿈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모래알처럼 손 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프로 초기에는 심각하게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명색이 프로가 됐는데, 도무지 1군 출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안 되는구나. 이렇게 야구를 그만둬야하는구나' 싶었다. 그때 낙심한 조중근의 마음을 잡아준 이가 양승관 SK 2군 타격코치(현 넥센 2군 감독)였다.

2003년 1군 무대를 밟은 조중근은 이후 꾸준히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2005년에는 주로 대타였으나 108경기에 출전했다. 홈런을 6개 때렸고, 타점이 30개였다. 이제 자리를 잡는가 싶었다. 그런데 2007년 SK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조중근을 외면했다. 전반기 내내 2군을 전전하던 조중근은 시즌 중에 현대 채종범과 맞트레이드됐다. 새로운 기회이면서, 프로에서 맞은 첫번째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것은 내리막길이었고, 그의 주 무대는 2군이었다. 넥센 관계자는 "2군 생활이 길어지면 의욕이 넘치던 선수도 대부분 풀이 죽게 된다. 조중근도 2군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지난해 7월 1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SK전. 4회말 1사 2,3루에서 3루주자 조중근이 송지만의 희생플라이 때 홈으로 뛰어들어 세이프되고 있다. 스포츠조선 DB
기다림의 시간의 길어지고, 때론 타성에 젖기도 했지만, 조중근은 맥없이 무너지지 않았다. 지난 시즌 초반 그는 뒤늦게 활짝 꽃망울을 터트리는 듯 보였다. 전반기 36경기에 나서 타율 3할2푼7리(98타수 32안타) 3홈런 16타점. 선발 출전이 늘었다.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교통사고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7월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추돌사고를 냈다. 교통사고와 함께 1군 생활도 막을 내렸다. 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달았던 등번호를 보면, 양지보다 그늘이 많았던 그의 야구인생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 55번을 쓰고 있는데, 지금까지 6번이나 등번호를 바꿨단다. 조중근은 "마쓰이 히데키의 등번호 55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어 지난해 새 등번호를 달았다"고 했다.


SK 시절 47번을 쓰다가 선배 이상훈이 들어오면서 내줬고, 31번은 가득염, 10번은 이진영에게 양보했다. 조중근은 선배들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비주전 멤버의 약한 입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프로에서 맞은 12번째 시즌, 조중근은 봄날 다시 출발선에 섰다. 3월 28일 현재 시범경기 7게임에 나서 타율 2할3푼8리(21타수 5안타) 1홈런 1타점을 기록했다. 홈런 1개가 눈에 띄지만 기록만 놓고보면 강렬한 인상을 나길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김시진 감독은 기대가 크다고 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조중근이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했던 김 감독이다. 재활훈련을 거쳐 2군에 머물고 있는 유한준이 복귀할 때까지 조중근에게 5번을 맡기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백업이 아닌 주전급으로 도약했을 때 가능한 얘기다.

조중근은 "기존 선수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고 했지만, 구단 관계자는 "그가 본격적으로 외야 경쟁에 뛰어들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조중근에게 자신만의 경쟁력을 물었더니 "나름대로 공을 때리는 것에 자신이 있다. 매년 열심히 해보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올해는 그게 아니라 해야 된다"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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