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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병현은 마침내 박찬호와의 선발 맞대결을 할 수 있게 됐다.
박찬호와의 선발 맞대결은, 김병현에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메이저리그 경력 초기에 김병현은 마무리투수로 각광받았다. 마이크 피아자를 윽박질러 삼진으로 잡아내며 첫 세이브를 달성하던 순간부터, 2002년에 36세이브를 기록하며 그해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영광을 안기까지, 김병현은 최고의 스토퍼였다.
어느 순간부터 김병현은 선발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내보였다. 2000년에 애리조나에서 딱 1게임에 선발로 나섰지만, 본격적으로 선발로 뛰기 시작한 건 2003년부터였다. 2003년에 애리조나와 보스턴에서 12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그의 빅리그 경력 394경기 가운데 87경기가 선발 등판이었다.
'한국에선 구원보다 선발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내용 속에는 결국 박찬호에 대한 선망의 뜻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란 신세계를 국내 팬들에게 보여준 개척자이며, 동시에 97년 이후 풀타임 선발로 뛰면서 5일마다 아침 나절에 온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무리로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김병현은 박찬호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열혈 마니아팬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지명도에선 역시 박찬호가 훨씬 앞서있었다.
안타깝게도, 선발에 대한 애착은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경력을 단축시킨 한 원인이 돼버렸다. 타순이 한두 바퀴 돌고나면, 김병현의 낯선 투구폼과 공 궤적에 상대 타자들이 적응을 했다. 투구폼이 커서 도루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평균 구속이 낮아지면서 'BK표 슈트성 직구'도 날카로운 맛이 사라졌다. 결국 부상을 참아가며 던지다 몸 전체의 밸런스를 잃었다.
김병현은 선발로 뛴 87경기에서 25승35패에 방어율 5.07을 기록했다. 피안타율 2할7푼7리, 피장타율 4할5푼6리,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1.508, 9이닝당 탈삼진 7.2개였다. 불펜에서 뛴 307경기에선 29승25패에 방어율 3.58이었다. 피안타율 2할4리, 피장타율 3할1푼, WHIP는 1.203, 9이닝당 탈삼진은 10.5개였다.
이같은 사연이 있는 김병현이 드디어 박찬호와 선발 맞대결을 펼칠 수 있게 됐다. 올해 프로야구에 볼거리가 많아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김병현의 등장이 더욱 흥미로운 환경을 만들어놓았다. 굳이 박찬호와의 대결 뿐만이 아니다. 김병현과 이승엽, 김병현과 최희섭, 김병현과 김태균 등 투타 대결도 매번 큰 관심을 모을 것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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