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계약금을 받고 그해 가장 촉망받는 신인으로 입단한 선수 중 신인왕은 몇 명이나 됐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첫해엔 생각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다. 최동원은 83년 한국 프로야구 첫 신인왕이란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당시엔 파격적인 계약금 7000만원을 받은 최동원은 그해 9승16패 4세이브, 방어율 2.89의 성적을 올렸다. 아무래도 팀 전력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보니 승리를 챙기는게 쉽지 않았다. 결국 첫 신인왕의 자리는 미남 외야수 박종훈에게 돌아갔다.
가장 신인왕에 근접했던 선수는 선동열이었다. 85년 처음으로 계약금 1억원을 받고 입단한 선동열은 당시 계약문제로 전반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후기리그부터 출전을 했다. 그럼에도 7승4패 8세이브, 방어율 1.70을 기록해 '국보급 투수'임을 입증했다. 만약 전기리그부터 출전이 가능했다면 신인왕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해 신인왕은 같은 팀의 이순철에게 돌아갔다. 그 둘은 지금은 KIA의 감독과 수석코치로 지내고 있다.
최고 계약금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을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비록 신인왕은 받지 못했지만 이후 MVP가 되거나 타이틀 홀더가 되는 등 한국 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많았다.
최동원은 84년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탔고, 선동열도 입단 이듬해인 86년 첫 MVP 수상 후 두번을 더 받으며 '국보 투수'로 우뚝 섰다. 2007년 5억원을 받은 김광현(SK)도 2008년 최우수 선수가 되며 유망주에서 최고 선수로 발돋움했다. 송진우는 최다승(210승), 최다이닝(3003이닝), 최다 탈삼진(2048개) 등 투수 통산기록을 지니며 한화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을 했었다. 김동주는 단골 국가대표에 두산의 두목곰으로 불리는 스타로 국내 선수 중 최초로 100억원을 벌어들이는 선수가 되기도 했다.
아쉽게 돈에 맞는 값어치를 못한 이들도 있었다. 99년 LG는 1차지명한 투수 김상태에게 3억1000만원을 주며 에이스를 기대했으나 9승15패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해주지 못했고, 그해 신인왕은 라이벌인 두산의 1차지명 선수였던 홍성흔에게 돌아갔다. 2001년 당시 고졸 최고액인 5억3000만원을 받았던 삼성 이정호도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다. 150㎞가 넘는 빠른 공을 지녔음에도 프로의 벽을 넘지 못했고, 히어로즈로 옮기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결국 통산 35경기 등판, 1승1세이브 1홀드, 방어율 6.07의 기록만을 남기는데 그쳤다.
아무래도 최고액을 받고 입단하는 만큼 관심을 많이 받고, 선수는 그에 따른 압박감을 받게 된다. 당연히 상대팀에선 분석을 더 열심히 한다. 또 아마추어에서 최고의 선수이니 그만큼 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투수들은 팔꿈치나 어깨에 부상을 안고 입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2004년 2차 1순위로 최고액을 받았던 김수화(롯데)는 입단한 뒤 어깨 부상으로 첫해엔 던져보지도 못했다. 2008년 입단했던 이형종(LG) 역시 마찬가지. 스프링캠프에서 팔꿈치 통증으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에도 제 활약을 못해 '먹튀'라는 오명을 써야했다.
올해는 NC의 나성범과 한화의 하주석이 3억원으로 최고액을 받았다. 나성범은 2군에서만 뛰게 되니 신인왕 대상자가 되지 못해 하주석이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주석이 30년만에 처음으로 '최고액을 받은 신인왕'이 될까.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