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안치홍, 박찬호-이승엽과의 얽힌 유년의 추억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2-01-02 15:03


"그분들에겐 사소한 기억이라도, 제겐 커다란 기쁨이었어요."

유년 시절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친구들과의 교류, 부모님과의 추억을 통해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게 되는 시기가 바로 유소년기다. 특히, 마음 속에 품고있던 영웅과의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다. 아무리 짧은 만남이더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추억이 된다.

2009년 입단 이후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KIA의 간판 2루수가 된 안치홍(22)에게도 그런 소중한 추억이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입단 3년차에 골든글러브 2루수가 될 수 있던 비결도 어쩌면 그 추억을 통해 만들어진 기운 덕분일 지 모른다. 10여년 전, 당시 막 야구를 시작한 리틀야구부원 소년 안치홍에게 야구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준 인물은 바로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라이언킹' 이승엽이었다.

내가 '코리안특급'의 공을 받았다니!

2001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안치홍은 구리리틀야구단에서 포수를 맡고 있었다. 지금은 명품 2루수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지만, 사실 안치홍이 처음 동경했던 포지션은 포수. 현대 왕조를 이끌었던 포수 김동수가 당시 안치홍의 영웅이었다. 그러다보니 리틀팀에서도 자연스럽게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해 말이었다. 당시 다저스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던 박찬호는 비시즌에 국내에 귀국해 한 스포츠용품 회사와 함께 어린이 야구교실을 열었다. 박찬호가 직접 참가 선수들 앞에서 기술 시연을 하고, 야구 기술을 설명하는 클리닉이었다. 그런데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박찬호의 지도를 보조할 사람 즉, 박찬호가 던지는 공을 받아줄 포수가 필요했다. 이 보조요원으로 선발된 것이 당시 안치홍이다.

안치홍은 "당시 리틀팀 감독님께서 박찬호 선배님의 공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서 야구교실에 가게 됐어요. 선배님은 공을 던지면서 참가 어린이선수들에게 여러가지 설명을 하는 동안 저는 마스크를 쓰고 묵묵히 공을 받아드렸죠"라고 당시 추억담을 밝혔다.

당시 최전성기에 있던 박찬호인만큼 그의 공은 아무나 받을 수 없었다. 보호장구를 썼다고는 해도 어린이인만큼 박찬호는 최대한 살살 공을 던졌다고 한다. 물론, 클리닉에 앞서 안치홍에게 주의사항을 이야기하고 격려하는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살 던진다고 해도 박찬호의 공은 어린 안치홍에게는 충격이었다. "어린이가 던지는 거리에서 살살 던져주시는데도 커브의 각도가 엄청나게 떨어졌던 기억이 나요. 속으로 '이게 메이저리거구나'하는 감동을 받았죠"라고 말하는 안치홍의 눈빛은 당시처럼 반짝였다.


이후 안치홍과 박찬호가 만날 기회는 없었다. 안치홍은 "올해 박찬호 선배님이 한화로 오시게 됐으니 언젠가는 타석에서 상대할 날이 오겠죠. 생각만해도 짜릿할 거 같아요. 기회가 될 지 모르겠지만, 혹시 따로 얘기할 기회가 된다면 그때 일도 기억하시는 지 묻고 싶네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승엽이형, 저에겐 최고의 기억이었어요.

박찬호와의 만남이 있은 지 1년 후, 안치홍은 또 다른 슈퍼스타와 만나게 된다. 바로 당대 최고의 홈런타자였던 이승엽이었다. 역시 같은 스포츠용품 회사가 진행하는 야구클리닉. 1년 전 훈련보조 요원으로 참가했던 안치홍은 이번에는 초청선수로 당당히 클리닉에 참가했다.

2002년에는 여러명의 프로선수들이 어린이 야구교실에 참가했다. 이승엽을 비롯해 박한이와 당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던 송승준 등도 참가해 어린 후배들을 지도했다. 특히 이 해 클리닉의 백미는 선수가 코치가 되고, 어린이들은 팀을 나눠하는 토너먼트 경기였다. 4개팀으로 나눠 최종우승팀에게는 푸짐한 선물과 함께 우승팀의 영예가 돌아갔다.

당시 구리리틀팀 4번타자였던 안치홍은 이승엽이 코치를 맡은 팀에 포함됐다. 준결승에서 박한이가 이끄는 팀을 꺾고 결승에 오른 이승엽-안치홍 팀은 결승에게 리드를 내주고 있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안치홍은 지금도 당시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침 그해 삼성이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LG한테 4점차로 지다가 이승엽 선배님의 만루홈런으로 동점을 만든 뒤에 마해영 선배님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겼을 때에요. 우리팀이 지고 있어도 이승엽 선배님은 '괜찮아 역전하면 돼'라고 격려해주셨어요"라고 말문을 연 안치홍은 "그런데 정말 한국시리즈 상황처럼 게임이 풀렸어요. 만루에서 4번타자인 제가 동점 만루홈런을 쳤고, 제 뒤에 선수가 끝내기 홈런으로 이긴 거에요. 그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아마 그 기억 때문에 제가 계속 야구를 했던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안치홍에게는 야구를 천직으로 삼게 만든 최고의 추억이었지만, 이승엽에게는 그냥 수많은 봉사의 하나였나보다. 안치홍은 2009년 KIA 우승 후 아시아시리즈 때 이승엽과 만나 당시 일을 물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의 추억을 이야기하자 이승엽은 껄껄 웃으며 "그런 일이 있었니. 그때 너무 많은 클리닉에 참여해서 사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듣고보니 반갑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그때는 코치-선수였지만, 이제는 당당한 경쟁 선수로 만나게 된다. 안치홍은 "같은 선수라고는 해도, 박찬호나 이승엽 선배님은 제게 꿈을 심어주신 분들이에요. 무척 영광스럽고 흥분됩니다"라고 올 시즌 대결을 기대하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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