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발전의 초석 될 이대호의 작은 기증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1-12-29 16:07



이제는 오릭스맨이 된 이대호가 일본 진출을 앞두고 모교인 경남고에 통큰 기부를 했다. 이대호는 28일 훈련을 위해 찾은 경남고에서 후배들을 위한 야구용품 기증식을 가졌다. 피칭머신을 비롯해 스파이크, 운동화 등 약 2000만원 상당의 야구용품을 후배들에게 전달했다. 경남고를 이끌고 있는 이종운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이대호라는 영웅의 후배라는 자부심을 갖게 돼 큰 의미가 있다"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후배들을 위한 선물

수년째 독거노인들을 위해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하고 남몰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부활동을 벌여왔다. 그런 이대호이기에 이번 기부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다른 데 있다. 고가의 피칭머신이 기부 품목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이대호는 '꼭 피칭머신을 기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단다. 왜 하필 피칭머신이었을까.

이대호는 일본 진출을 앞두고 일찍부터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연말 들어서는 경남고에 나와 후배들과 함께 땀을 훌리고 있다. 등산, 수영,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몸을 만들었으니 가벼운 배팅과 캐치볼 등의 훈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대호는 매년 모교에 야구용품을 기증해왔다. 이번에는 더 크게 마음을 먹었다. 액수를 무작정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훈련을 하는 만큼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꼼꼼히 살피려고 애초부터 마음을 먹었다. 그는 "훈련을 지켜보며 선수들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생각했고 피칭머신이 있으면 후배들의 훈련 환경이 더욱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대호는 "모든 프로구단들이 피칭머신을 사용한다는 건 그만큼 훈련이 효율적으로 진행된다는 뜻 아니겠는가. 피칭머신이 한 대 있고 없고에 따라 타자들의 훈련량 차이는 크게 달라진다"는 말로 피칭머신의 효율성에 대해 설명하며 "내 작은 선물이 후배들에게 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종운 감독도 "대호가 후배들을 위해 의미있는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었던 것 같다.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작은 시작이 한국야구 발전에 초석 될 수 있다

경남고는 한국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이대호를 비롯해 올해 지병으로 별세한 최동원 전 한화 2군 감독, 허구연 MBC 해설위원, 송승준 임경완(이상 롯데) 등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왔다.


하지만 이런 명문학교에도 제대로 된 피칭머신 1대가 없었다. 수년 전 구입한 피칭머신이 1대 있지만 너무 낡아 훈련에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선수들이 스스로 배팅볼을 계속해서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본 이대호는 "후배들의 훈련을 보며 어린 시절 힘들게 운동했던 때가 머리속을 스쳐갔다"고 했다.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나도 학창시절 선배들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배팅볼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후배들이 선배들의 훈련을 돕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추운 날씨에 많은 배팅볼을 던지면 어깨에 큰 무리가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대호가 피칭머신을 기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고교선수들의 훈련 환경은 열악하다. 대부분의 학교가 잔디가 아닌 맨땅의 운동장에서 훈련을 진행한다. 맨땅에 수없이 굴러 엉망이 된 공들을 수시로 바꿀 형편도 못된다.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손으로 채지지도 않는 꺼칠꺼칠한 공을 던지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아무리 배팅볼이라지만 던지는 선수에게도, 그 공을 치는 타자에게도 제대로 된 훈련이 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대호는 줄곧 "야구선수로 성공해 꼭 유소년들을 위한 야구장을 만들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한국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다. 이대호의 이번 기증이 자신의 큰 꿈에 불씨를 당기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이 피칭머신에서 나오는 공을 치며 훈련한 선수들이 훗날 자신을 이어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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