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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와 이종욱의 대결. 왠지 뜬금 없을 것 같은 바로 이 투타 맞대결도 내년 시즌에는 흥미로운 관전포인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당시 11월20일 오키나와 아카마구장에서 열린 대표팀의 평가전. 박찬호는 대표팀이 아닌 상비군쪽 선발로 등판했다. 앞선 세차례 평가전에선 합계 8⅓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던 박찬호였다. 하지만 그날 경기에선 3이닝 동안 5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다. 홈런 2개를 허용했다.
홈런 2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종욱에게 허용한 우월 홈런이었다. 이종욱은 2006년부터 1군에서 뛰었고 2007년까지 2년간 합계 243경기를 뛰는 동안 홈런이 겨우 2개였다. 요즘의 이종욱은 한시즌에 홈런을 5개씩 치기도 하지만, 당시 이종욱은 홈런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타자였다. 그렇지만 이종욱은 3회에 박찬호로부터 2점홈런을 뽑아냈다.
박찬호는 경기후 인터뷰때 "(이종욱에게 허용한 두번째 홈런은) 볼카운트 1-2에서 몸쪽 직구를 붙이려다가 가운데로 몰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실투를 놓치지 않는 걸 보니 역시 대표팀 타자들이 다르다. 투수로서 같은 팀 타자들이 잘 친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라며 여유를 보였다.
진짜 사연은 다음부터다. 이틀 뒤인 11월22일. 박찬호는 불펜피칭때 독특한 상황 설정을 했다. 대표팀 톱타자인 이종욱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식으로 가상의 조건을 만들어놓은 채 불펜피칭을 한 것이다.
당시 선동열 수석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박찬호는 중간중간 "이종욱 1루!" 하고 외친 뒤 공을 던졌다. 발빠른 이종욱이 있다고 가정하고 퀵모션을 중점 훈련한 것이다. 잠시후 바깥쪽으로 빠른 직구를 던지려 했는데 한가운데로 공이 몰렸다. 그러자 박찬호는 "에~이, 이종욱에게 홈런 맞았네" 하면서 마운드를 발로 툭 걷어찼다. 실전이었다면 장타를 허용했을 거라는 자가진단이었다.
그후 또다시 던진 직구가 이번엔 왼손타자의 몸쪽 코스로 정확하게 박혔다. 박찬호는 "이종욱!, 배트 부러졌어~" 하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물론 타자는 서있지 않았지만, 왼손타자의 몸쪽 약간 낮은 코스로 치기 어렵게 제구됐다.
단체 시뮬레이션 훈련도 아닌데, 개인이 불펜피칭을 할 때 이처럼 특정 타자, 주자 이름을 외치면서 상황을 가정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당시 대표팀의 조계현 코치는 "찬호가 종욱이에게 홈런 맞았던 게 꽤 신경쓰였던 것 같다"며 웃었다.
바로 이런 것이다. 한양대 재학 시절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박찬호는 국내 프로야구 타자들과 접할 일이 거의 없었다. 내년부터는 숱한 맞대결을 해야 한다. 이종욱 뿐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승엽과 대결해야 하고, 대표팀에선 든든한 동료였던 김동주와도 진검승부를 하게 된다. 개막후 박찬호가 첫 등판하는 순간부터 모든 장면이 팬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종욱과 박찬호의 재대결이 어떻게 결론날 지 매우 궁금하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