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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감독, 20년만에 아키야마에게 돌려준 빚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11-30 11:37


류중일 감독은 20년전 아키야마 감독에게서 느꼈을 프로야구 수준 차이를 이번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통해 드디어 털어냈다. 류중일 감독과 소프트뱅크 아키야마 감독(왼쪽 두번째), 호주와 대만 등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한 4개국 사령탑이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있다. 타이중(대만)=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선수 아키야마'에게 진 빚을 '감독 류중일'이 20년만에 갚았다.

삼성이 29일 소프트뱅크를 꺾고 아시아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 이면에는 20년에 걸친 이야기, 한국 프로야구를 절망케했던 소프트뱅크 아키야마 고지 감독과 현장에서 그를 지켜봤던 류중일 감독의 사연이 담겨있다.

지난 91년 11월. 첫번째 한-일 슈퍼게임이 일본에서 열렸다. 당시 6차례 대결에서 한국 선발팀은 2승4패로 외견상 선전한 것 같은 기록을 남겼다. 현실은 아니었다. 50년이나 역사가 빠른 일본프로야구 선발팀을 상대로, 프로 출범후 겨우 10시즌을 치른 상태였던 한국 선발팀은 절망감을 느꼈다. 당시 1,3,4차전에서 홈런을 기록했던 김성한 전 KIA 감독은 훗날 "나도 홈런을 치긴 했지만 얼떨결에 쳤다. 직접 일본프로야구와 상대해보니 수준 차이가 엄청나다는 걸 느꼈다"고 회고했다.

일본 선발팀은 6차례 경기중 초반 몇경기에만 실질적인 올스타급 멤버가 출전했는데, 한국은 3차전까지 모두 패했다. 국내에서 한가닥 한다던 프로야구 선수들이, 속된말로 얼굴이 허옇게 떠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삼성 류중일 감독이 한국 선발팀의 유격수를 맡았었다. 91년 11월2일 도쿄돔에서 열린 역사적인 한-일 슈퍼게임 1차전.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인 구와타 마쓰미가 일본 선발로 나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국은 3대8로 패하며 첫경기부터 거대한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1차전에서 선수 류중일은 7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좋은 성적이었다. 타점은 없었다. 그런데 일본 선발팀의 3번 중견수 아키야마는 2안타에 2타점을 기록했다. 바로 현 소프트뱅크 감독인 바로 그 아키야마였다. 아키야마는 2~6차전에는 출전하지도 않았다.

일본은 1회에 주니치 간판타자 오치아이가 적시타를 쳤고 3회에는 세이부의 스타 아키야마가 추가 타점을 뽑았다. 5회에는 아키야마와 오치아이가 연속타자 홈런을 쳤다. 아키야마는 당시 트레이드마크인 홈런 치고 공중제비를 도는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다. 그걸 지켜보면서 한국 선수들은 기가 팍 꺾였다. 요즘 같으면 당장 빈볼이 날아들 세리머니겠지만, 그 시절에 아키야마가 가끔 중요한 홈런을 치고 이처럼 공중제비를 도는 건 일본팬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한국 선발팀과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건 아키야마에게도 의미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 선발팀의 사령탑이었던 해태 김응용 감독은 "56년 역사의 일본프로야구가 우리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붙어보니 (한국이) 힘이나 기술에서 한수 아래였다"고 자평했다. 일본 선발팀의 모리 감독은 "한국은 투수진에 비해 야수들의 수준이 처진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류중일 감독 역시 91년 슈퍼게임이 언급될 때마다 "솔직히 우리가 상대가 안됐던 시절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류중일 감독은 아키야마 감독보다 한살 어리다. 동시대를 뛰었던 국가대표급 선수가 20년의 세월이 흘러 1년의 차이를 두고 사령탑에 오른 뒤 일종의 국가대항전 성격으로 맞붙었다. 류중일 감독이 승리했다. 예선전에서 0대9로 완패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엔 우승은 류 감독에게 돌아갔다.

일본 언론은 삼성이 소프트뱅크를 누르고 우승한 것과 관련해 30일 '하극상'이란 표현을 썼다. 여전히 일본프로야구가 한수 위라는 시각에서 나온 표현일 것이다. 결국 이번 패배로 일본프로야구의 자존심이 다소 구겨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한번의 승리가 '한국프로야구가 일본프로야구의 기량을 개별 팀 차원에서도 완전히 따라잡았다'는 걸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승리다. 아키야마의 공중제비를 풀죽은 눈으로 바라보던 한국 간판선수들의 아쉬움을, 류중일 감독이 20년만에 기분좋게 되갚아준 셈이다. 스토리가 있는 아시아시리즈였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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