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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선동열 KBO 홍보위원이 "특별히 생각나는 선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미국 진출이 사실상 결정된 FA 정대현에 관한 얘기다.
선 위원은 시드니올림픽에서 대표팀 전력분석원으로 일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KBO에서 대표팀 선발위원회가 열릴 때였다. 본래는 전력분석원이 참석할 이유가 없는 자리였지만 엉겁결에 선 위원이 회의에 합석했다. 그날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 추천을 해보라"는 말을 듣고 선 위원이 정대현을 떠올렸다. 미국 혹은 남미 팀과 대결에서 효율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결국 정대현은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올림픽 미국전에 두차례 선발로 나가 13⅓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며 이름을 알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최고의 호투였다.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정대현이 올림픽에서 호투하고 SK 유니폼을 입고, 그후 각종 국제대회마다 단골로 대표팀에 뽑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한국의 금메달을 확정지은 마지막 병살타를 쿠바 타선을 상대로 유도해냈다.
정대현은, 지금은 팔이 조금 높아졌지만 본래 언더핸드의 교과서 같은 폼이었다. 공이 빠르지 않은 언더핸드 투수는 팔이 낮은 곳에서 시작될수록 타자를 유인하는 공을 던지는데 유리하다. 일본프로야구의 와타나베 스케와 함께 정대현도 상당히 무게중심이 낮은 언더핸드 스타일이다. 정대현이 던지면, 타자가 보기에 낮은 공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고 적당하다 싶어 휘두르면 높은 코스로 들어간다. 때론 떠오르면서 바깥쪽으로 달아난다. 어퍼스윙이 많은 미국 타자들에게 효율적이라는 얘기를 듣는 이유다.
정대현이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던 건 스스로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후 여러 차례 대표팀 차출로 이어졌고, 미국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면서 인정받게 됐으니 말이다. 선동열 감독은 몇년전 "대현이는 나에게 연봉 절반쯤 떼줘야 한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기량을 갖췄기에 지금의 모습이 가능했겠지만, 첫 출발은 분명 운이 따랐던 정대현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