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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이날 내내 침묵하던 이대호의 극적인 동점타로 6-6 동점을 만든 롯데는 9회말 1사 만루의 천금같은 찬스를 맞이했다.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부산 팬들은 진작부터 끝내기 승리를 예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석에 들어선 이가 손아섭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게 웬걸 손아섭의 타구는 2루수 앞 땅볼로 정확하게 굴러갔고, 최악의 시나리오 병살타로 끝났다. 이후 롯데는 연장 10회 초 1실점을 하며 분패하고 말았다.
이날 김주찬의 첫 타석 홈런으로 기분좋게 시작한 1회말 1사 만루 추가득점 찬스를 강민호의 병살타로 날려버린 롯데였으니 원통함은 더욱 컸다.
9회말 다잡은 고기를 놓아준 병살 마무리. 최근 포스트시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2008년 한국시리즈다.
그 때의 추억은 SK 팬들이 더욱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상대가 SK였다.
2008년 10월 29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 SK의 한국시리즈 3차전. 1, 2차전을 1승씩 나눠가진 두 팀은 5회까지 1-1 동점으로 팽팽한 균형을 이루다가 6회 SK의 최 정의 투런홈런과 7회 두산 최승환의 솔로홈런을 주고 받으며 9회말까지 몰고 갔다.
당시 SK 김성근 감독은 선발투수 레이번, 정우람, 윤길현, 조웅천, 이승호에 이어 8회말부터 특급 마무리로 이름을 떨쳤던 정대현을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정대현은 9회말에서 유재웅, 이종욱, 고영민에게 안타를 잇따라 맞으며 1사 만루로 몰렸다. 타석에는 김현수가 올라섰다.
당시의 김현수는 1988년생 동갑내기 손아섭과 똑같은 입장이었다. 김현수는 2008년 시즌에 정규시즌 평균 타율 3할5푼7리로 프로 데뷔(2006년) 이후 최고의 해를 맞고 있었다. 손아섭 역시 올시즌 평균 타율 3할2푼6리로 김현수에 비해 좀 늦었다 뿐이지 프로 데뷔(2007년)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낸 건 마찬가지다.
두산은 SK가 정대현을 조기 투입하는 등 불펜을 소진한 터라 연장까지 몰고만 가도 유리한 상황. 그러나 김현수는 16일 손아섭과 마찬가지로 정근우에게 잡히고 말았다. 2루를 통과할 듯한 타구를 잡은 정근우가 잽싸게 2루 베이스를 밟고 1루로 송구하는 환상적인 수비를 펼쳤기 때문이다.
기가 막히게도 통한의 병살 마무리는 5차전에서도 또 일어났다. 4차전까지 1승3패로 몰린 두산은 5차전 0-2 간발의 차로 끌려가다가 다시 9회말을 맞았다. 운명의 마지막 공격에서 두산은 최승환의 볼넷과 김재호의 내야 안타, 이종욱의 좌전 안타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고, 고영민의 투수앞 땅볼 이후 1사 만루 찬스를 이어나갔다. 운명의 장난일까. 타석에 들어선 이는 또 김현수였다.
하지만 김현수의 타구는 투수 앞 땅볼로 떨어졌고, 투수-포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가 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결국 1차전 승리후 4연패로 물러난 두산은 2007년에 이어 2년 연속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부산=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