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였던 윤희상, 잠재력 폭발시킨 원동력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1-10-13 12:17


12일 광주에서 벌어진 KIA와 SK의 준PO4차전에서 SK 선발 윤희상이 KIA 타자들을 상대로 춤을 추는 듯 환상적인 피칭을 하고 있다.광주=김재현 기자 basser@sportschosun.com

준플레이오프 깜짝 스타로 등장한 SK 윤희상(26). 그는 철부지였다.

각 팀의 스카우트들은 "고교를 졸업한 뒤 프로에 직행하는 선수들은 절실함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얘기한다.

그도 그랬다. 2004년 SK 스카우트들은 2차 1라운드에 윤희상을 낙점했다.

1m93의 큰 키에 유연한 투구폼. 150㎞이 넘는 광속구까지. 잠재력은 너무나 풍부했다. SK 한 관계자는 "당시 윤희상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대성하면 선동열과 같은 수준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프로 출발은 좋지 않았다 2004년 11경기에 나서 1패, 평균방어율 9.45였다. 운도 없었다. 결국 2005년 어깨부상으로 수술을 해야만 했다. 한창 기량을 갈고 닦아야 할 시기에 부상과 싸웠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야구에 대한 진지함이었다. 윤희상은 그게 없었다. 코칭스태프들이 시키는대로 훈련했고, 기계적으로 생활했다.

당연히 2군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윤희상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시 2군 매니저로 윤희상을 챙긴 임광엽 1군 매니저는 "그때 모든 선수가 그랬듯이 윤희상도 어렸다. 2군에서의 생활도 힘들었을 것이다. 농담처럼 '트레이드시켜주면 안되냐'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야구에 대해 집중하지 못했다. 자질은 충분했지만, 2군에서 1군으로 도약하는 그 한계를 좀처럼 깨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군대에 갔다. 공익근무를 하면서 리틀야구단 코치로 나섰다. 윤희상의 마인드는 바뀌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야구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진지한 태도를 오히려 배우기 시작했다.

2009년 다시 팀에 합류한 그에게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1군의 높은 벽이었다. 수술을 받은 어깨도 완전치 않았다. 2군에서 완전한 컨디션으로 던지지 못했다. SK 투수진도 너무나 두터웠다. 어쩌다 1군에 올라와도 곧바로 2군에 내려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윤희상은 좌절하지 않았다. 야구를 하는 자체가 기뻤고, 거기에 집중했다.

결국 그는 올 시즌 결실을 보고 있다. 2군에서 호투를 거듭한 윤희상은 결국 1군으로 올라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올 시즌 20경기에 출전, 3승1패 4.82의 방어율을 기록한 윤희상은 그의 좋은 경기력을 눈여겨 본 이만수 감독대행의 히든카드가 됐다. 결국 준플레이오프 4차전 6⅔이닝 무실점.

그는 더 이상 철부지가 아니다. 이제 그는 진정한 프로다. 광주=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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