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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 그 말이 딱 맞다. 성적을 떠나, 누가 받아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 MVP 경쟁이다.
부상도 막을 수 없었다
이건 외형적인 성적이다. 그 성적속에는, 아픔을 희망으로 바꾼 땀방울이 녹아있다.
2006년 오승환은 구원왕이었다. 4승3패 47세이브, 방어율 1.59로 아시아 최다세이브 기록까지 세웠다. 이후 3년 연속 최고 소방수자리에 올랐다.
그러다 2009년 팔꿈치에 이상신호가 왔다. 팔꿈치는 대학시절 한번 수술을 받았던 부위였다. 성적도 2승2패 19세이브, 방어율 4.83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듬해에는 팔꿈치 뼈조각 제거수술까지 받았다. 그동안 너무 무리한 결과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주무기인 직구의 위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사실 올해 스프링캠프 때도 전력의 변수로 분류됐다. 재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돌부처' 오승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루했는지, 얼마나 힘든 재활이었는지 내색 한번 안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더 완벽해져서 마운드에 올랐다. 2006년 당시 평균 146㎞정도였던 직구스피드가 올해는 148㎞까지 올랐다. 부상은 결국 더 강해지기 위한 잠시동안의 시련이었을 뿐이었다.
죽기살기로 했다
얼마전 최형우는 스포츠조선 '10대1 인터뷰'에 초대받았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삼성에서 방출된 뒤 경찰청에 찾아가 테스트를 받았다. 남은 게 없었다. 그냥 죽기살기로 했다." 2008년 신인왕에 올랐을 때를 떠올리면서도 "그 때도 죽기살기로 했다.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아야 했다"고 했다. 최형우는 '죽기살기로' 야구를 했다. 그 결과가 30홈런, 114타점, 타율 3할3푼5리다.
최형우는 정말 반전드라마의 주인공이다. 2002년 2차6라운드 48번으로 삼성유니폼을 입었다. 6라운드 지명순번이면, 그야말로 별볼일 없는 선수다. 그것도 포수자원이었다.
1군에서 고작 6경기를 뛴 뒤 2005년 10월, 최형우는 방출통보를 받았다. 눈앞이 깜깜했다. 상무에 지원했지만 실패했다.다행히 경찰청이 창단되면서 한가닥 희망을 찾았다. 그 때부터 그의 말대로 '죽기살기' 야구인생이 시작됐다.
2007년 2군에서 타격 7관왕에 올랐다. 여러 팀에서 입단제의가 왔지만, 삼성을 택했다. 버려진 팀에서 꼭 성공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최형우가 홈런 타이틀을 차지하면 사상 최초의 방출 경험 홈런왕이 된다. MVP에 올라도 마찬가지다.
최다패에서 최다승까지
2007년이었다. 윤석민은 시즌 도중 10패째를 기록했다. 당시 4승에 방어율은 2.56이었다. 피안타율은 2할3푼6리, 전체 4위였다. 방어율은 2위였다.
결국 그 해, 18패를 당했다. 최다패였다. 최종성적은 7승18패, 방어율 3.78. 방어율과 2.2점이었던 득점지원률을 감안하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였다.
그 때 당연히 실망감이 컸다. 잘막다가도 한두점 내주면 스스로 무너졌다. 계속된 빈약한 타선지원에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 아픈 과거다.
올해 윤석민은 이런 말을 했다. "마운드에서 편하게 던진다. 실점을 해도 신경쓰지 않고 내 공을 던지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인드의 변화다. 시즌 초 경기가 잘 안풀릴 때도, 윤석민은 그렇게 던지려고 노력했다.
윤석민은 고질병이 있었다. 아킬레스건이다. 그 탓에 러닝을 많이 하지 못했고, 후반에 체력이 떨어졌다. 올해 시즌 전 그 증상이 없어졌다. 조범현 감독은 "어느 때보다 많이 달렸다. 그래도 아프지 않다고 하니 올시즌 기대가 크다"며 웃었었다. 최다패에서 최다승까지, 인생 역전드라마의 주인공은 윤석민이다.
신보순 기자 bsshi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