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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스산한 LG 덕아웃을 웃음바다로 만든 이순철 해설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1-09-21 19:12



21일 잠실구장. LG-넥센전을 앞두고 LG 덕아웃은 조용했다. 4강에서 멀어진 뒤 박종훈 감독과 취재진 사이에 오가는 말은 부쩍 줄었다. 팀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애매한 상황. 이날도 짧은 대화만이 오갔다. 이때 이순철 MBC 스포츠+ 해설위원이 덕아웃으로 들어왔다.

박 감독: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세요.

이 위원: 안녕하세요. (취재진을 보면서) 야구 이야기해서 괴롭히지 말아요. 유니폼 입고 이 자리에 한번 앉아봐요. 정말 힘듭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잔다니까.

박 감독: (말 없이 미소짓는다)

이 위원: 아마 선수들이 20경기 정도 남겨두고 2할9푼5리에서 3할5리 걸려있을 때 밤마다 고민되는 거랑 비슷할 거에요. 3할 치느냐 마냐에서 죽겠거든. 안 그래요?

박 감독: (잠시 망설인 뒤) 음, 그런 것 같네요.

이 위원: 그러고 보면 (장)효조 형님은 정말 대단해. 근데 그 형도 옛날에 까치 김정수만 만나면 안 됐어. 오죽했으면 볼넷 골라내려고 칠 생각 안하고 타석에서 멀리 서있었다니까. 볼넷 하나 얻고 3타수 무안타 하겠다면서.

덕아웃이 웃음바다가 됐다. 이 위원은 온몸을 써가며 설명에 열을 올렸다.


박 감독: (크게 웃으며) 타석에서 집중력이 엄청났던 분인데, 그런 일이 또 있었네.

이 위원: 집중력 엄청 났지. 병뚜껑 갖고 배팅 훈련 할 정도였으니….

박 감독과 이 위원 모두 옛 추억에 잠긴 모습이었다. 이 위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위원: (취재진을 바라보며) 말 나온 김에 (최)동원이형 얘기도 할게요. 내가 85년도에 입단하고 구덕구장에 가서 동원이형이랑 처음 만난 날이었어요. 근데 우리팀 형들이 전부 '저 형 갔다'고 말하더라고. 84년도에 한국시리즈 혼자 4승하고 나서니까. 근데 타석에 들어서니까 어이가 없더라고.

박 감독과 취재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위원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위원: (배트를 든 시늉을 하면서) 공이 눈높이로 들어오다 무릎 밑에까지 뚝 떨어지더라니까. 그냥 삼진 먹었지. 덕아웃 들어와서 형들한테 '뭐가 간 거냐'고 했지. 그러니까 다들 '저게 느려진거야'라고 말하더라고.

덕아웃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 위원과 박 감독은 이내 "형들이 너무 빨리 가셨어"라고 말하며 하늘을 바라봤다. 모두를 추억에 잠기게 만든 이 위원의 기억이었다.


잠실=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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