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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롯데 사례로 본 '페이크 수비', 때론 치명적

김남형 기자

기사입력 2011-09-21 13:57


롯데 이대호가 20일 부산 SK전 6회에 안타를 터뜨리고 1루를 밟는 모습. 조원우 1루 코치가 2루로 뛰는 걸 막고 있다. 프로야구는 다양한 장면에서 수비측이 페이크플레이를 한다. 주자가 신경쓰지 않으면 속임수에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산=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페이크(fake·속임수)' 동작은 공격수들의 몫으로 이해된다. 축구의 그 유명한 '헛다리 짚기'도 공격수가 어느 방향으로 드리블할 지를 감추기 위한 동작. 농구에서도 페이크 플레이는 당연히 공격수들에 의해 이뤄진다.

프로야구에도 공격수의 페이크 플레이가 있다. 흔히 버스터라 불리는 '페이크번트 슬래시(fake bunt-slash)'가 대표적이다. 번트를 대는 척하며 내야진을 끌어들인 뒤 강공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독특하게도, 프로야구에는 수비수들이 써먹는 페이크 플레이가 종종 등장한다. 때론 수비수의 페이크 동작이 승부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기도 한다.

롯데, 승리 속에 숨은 페이크 수비의 기본

롯데는 20일 SK전에서 5대4로 소중한 승리를 얻었다. 2위 확보의 분수령이 될 맞대결 3연전에서 첫날 승리했으니 한결 부담을 덜게 됐다.

이날 롯데는 9회 마지막 수비때 5-4로 1점차까지 쫓긴 상황에서 1사 1,2루 위기를 맞았다. 이때 SK 박재홍이 김사율로부터 우전안타를 뽑아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2루주자 홍명찬이 3루에서 멈춰섰다.

박재홍의 안타때 롯데 우익수 황성용의 페이크 플레이가 적절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박재홍의 타구는 잘 맞았는데 마치 라이너성 타구처럼 날아갔다. 우익수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성용은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타구임을 직감하면서도 글러브를 가슴보다 높게 끌어올리고 대기했다. 마치 잡을 수 있는 타구인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대주자 홍명찬은 쉽게 뛸 수 없었다. 타구가 거의 땅에 떨어지는 게 확인된 순간에야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너무 늦었다. 3루에서 스톱. 그후 롯데는 인필드플라이와 외야플라이를 유도해 결국 승리를 지켰다.


1사 상황에서 홍명찬이 타구 판단을 빨리 해 처음부터 스타트를 끊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자칫하면 더블아웃으로 경기가 그대로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킵 동작이 적절히 이뤄졌다면, 본인은 홈까지 뛰지 않더라도 최소한 우익수의 다급한 홈송구를 이끌어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 됐다면 실책 등 또다른 변수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었다.

모든 외야수는 황성용과 같은 페이크 동작을 기본으로 숙지한다. 하지만 매 상황마다 실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황성용은 이날 경기에서 분명 큰 변수가 된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페이크 태그, 페이크 송구도 있다

지난달 중순 뉴욕 메츠 3루수 데이비드 라이트가 기막힌 페이크 플레이를 보여줬다. 샌디에이고와의 원정경기. 2사 2루에서 상대 타자가 친 타구는 3루수 깊숙한 곳이었다. 베이스 뒤로 물러나 타구를 잡은 라이트는 일단 1루쪽으로 정상적인 송구를 하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2루에서 3루로 뛴 샌디에이고의 카메론 메이빈은 데이비드 라이트의 송구 동작을 본 뒤 무심코 3루에서 오버런을 했다. 이때였다. 라이트는 1루로 공을 던지지 않고 오버런한 메이빈을 향해 달려갔다. 메이빈이 뒤늦게 눈치 채고 3루로 복귀했지만 라이트의 태그가 빨랐다. 우리 프로야구에서도 좋은 유격수들이 역모션 방향의 깊숙한 타구를 잡은 뒤 2루 주자의 3루 오버런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경우가 가끔 나온다.

이런 경우도 있다. 동점 상황에서 9회말 1사 1루. 1루 주자가 발이 빠르다. 결국 도루를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시도했다. 상대팀 포수가 공을 잘 못 던지는 바람에 중견수쪽으로 빠졌다. 이때 도루를 한 선수가 공의 행방을 순간적으로 놓칠 수도 있다. 수비쪽의 2루수나 유격수는 실제로는 공을 갖고 있지 않지만 이 장면에서 엎어진 채 있는 주자에게 태그하는 시늉을 해야 한다. 눈이 빠른 주자는 뒤로 빠진 공을 재빠르게 인식할 수 있지만, 경험 적은 주자는 그저 도루에 성공했다는 사실과 태그가 들어왔다는 느낌을 통해 안도하며 계속 납작 엎드려있게 된다.

이 주자가 공이 뒤로 빠진 걸 눈치채고 3루까지 달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사 3루는 1사 2루에 비해 점수 낼 확률이 높아지고, 폭투 등 여러 가능성도 생긴다.

우전안타때 1루 주자가 3루까지 뛰고 있다고 가정하자. 수비쪽 3루수는 주자가 달려오는 걸 보면서 아무 대비 없는 듯한 무심한 자세로 서있을 때가 있다. 실제로는 맹렬하게 접전 타이밍으로 송구가 날아오고 있는데 말이다. 달려오는 주자는 3루수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피드를 줄일 때가 있다. 이때 마지막 순간에 3루수가 자세를 낮추며 공을 받고 주자 태그를 시도하는 경우도 일종의 페이크다. 홈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 근본적으로는 적시타를 맞았을 때 수비쪽에서 마운드 부근에 커트맨들이 유기적으로 달려들어가는 것 또한 페이크의 일부분이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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