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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그의 전성기는 고교시절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경쟁과 우정은 아마추어 국가대표팀을 거쳐 프로무대에 와서 더욱 굳건해졌다. 김 감독은 "나와 (최)동원이는 77년부터 82년까지 6년간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 시절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면서 최 감독과의 추억담을 꺼냈다. "70년대 대표팀 훈련을 하와이에서 진행할 때인데, 와이키키 해변가에서 함께 놀다가 파도에 휩쓸려 최동원의 안경이 없어졌다. 당시 최동원의 부친은 아들을 위해 고가의 최신식 안경을 맞춰줬는데, 그걸 찾으려고 둘이 새벽부터 해변가를 뒤지던 일이 떠오른다" 벌써 30년도 더 된 옛 추억이었다.
프로에 입문한 뒤 최동원과 김시진은 늘 비교의 대상이었다. 후에 선동열이라는 걸출한 후배가 등장했지만, 당대에는 두 사람이 최고 투수를 놓고 자웅을 겨뤘다. 압권은 84년 한국시리즈였다. 롯데 에이스 최동원은 김시진이 버티는 삼성을 상대로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며 우승을 팀에 안겼다. 김시진 감독은 "직구는 나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파워 커브 그게 정말 대단했다. 보통 커브는 시속 110㎞ 후반~120㎞ 초반이었는데, 최동원은 125~6㎞의 커브를 던졌다. 거의 슬라이더와 맞먹는 스피드였다"며 먼저 떠난 라이벌에게 찬사를 건넸다.
하지만 정작 김시진 감독이 기억하는 최동원의 전성기는 오히려 프로 시절이 아닌 고교시절이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내 생각에 최동원의 구위가 가장 좋았던 시절은 고1~고2 때가 아닌가 한다. 84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을 거뒀을 때보다 고교 때가 훨씬 위력적이었다. 최동원은 정말 무쇠팔이었다"며 뒤늦게 라이벌 최동원이 진정 최고였다고 고백했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