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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대통령도 일반팬과 똑같다'.VVIP 야구관전 문화 달라졌다.

신창범 기자

기사입력 2011-09-04 14:40 | 최종수정 2011-09-04 14:57


이명박 대통령과 가족들이 3일 LG-롯데전이 열린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양 팀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은 대통령이 야구장을 찾는다는 사실을 경기 직전에야 알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양팀 고위 관계자들만이 대통령의 방문을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의 신변과 관련된 보안 때문이었다.

실제로 야구장을 찾은 사람들은 어떤 낌새도 채지 못했다. 분위기가 평소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엔 대통령이 야구장을 찾는 날이면 '비상'이 걸렸다. 검은색 선글라스에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경호원들이 곳곳에 배치됐다. 심지어 폭발물 탐지견도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야구장을 찾은 이날은 관중이나 취재진, 관계자들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없었다.

경기전 청와대 경호실측은 현장에 나온 취재 기자와 중계 방송사에 4회 이전까지는 기사 또는 화면을 내보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역시 대통령 가족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 때문이었지 경호와 관련된 제재는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는 4회가 끝난 뒤 홈 팀 LG의 팬 이벤트인 키스타임 때 주인공으로 전광판 카메라에 잡혔다. 수줍게 웃던 대통령 내외는 결국 관중들의 "뽀뽀해"라는 요청에 입맞춤을 했고, 큰 박수를 받았다.

이벤트가 끝난 뒤 경호실 소속 사무관은 잠실야구장 기자실을 찾아 "혹시라도 오늘 취재하는 데 불편했던 점이 있었다면 말해 달라. 대통령께서 오늘 야구장 방문과 관련해 일반 관중이나 야구 취재 기자들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말라고 지시하셨다"며 협조해 준 취재진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가족들은 대통령 신분이 아닌 일반 야구팬으로 야구를 즐기기 위해 야구장을 찾았던 것이다. 청와대측도 대통령의 야구장 방문과 관련해 "대통령 내외께서 모두 야구를 좋아하신다. 예전부터 야구장을 찾고 싶었는데 주말을 맞아 손자 손녀와 경기를 관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특별 신분인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들은 개막전이나 포스트시즌 등 큰 이벤트에 맞춰 야구장을 찾았고, 주로 시구를 했다. 한마디로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행사'였다. 행사가 끝나면 두 세 이닝 보다가 자리를 뜨는 게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사례를 포함해 최근엔 이들 VVIP들도 '진짜 팬'으로서 야구장을 찾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7월29일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삼성과 LG의 경기를 TV로 지켜보다 삼성이 역전에 성공하자 급히 잠실구장을 찾아 삼성을 응원했고, 경기가 끝난 뒤엔 그라운드로 내려가 선수단을 격려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역시 지난달 7일 한화와 LG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을 깜짝 방문했다. 6회쯤 야구장에 나타난 김 회장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본부석에 앉아 지켜봤다. 또 경기가 끝난 뒤엔 그라운드로 내려가 선수단을 격려했고, 이때 젊은 한화 팬 몇몇이 관중석에서 "김태균 잡아주세요"라고 외치자 김 회장은 그 쪽을 향해 "잡아올게"라며 화끈하게 화답했다.

VVIP들이 행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가로운 저녁 한 명의 팬으로서 산책하듯 여유롭게 야구장을 찾아 즐기는 시대다.


잠실=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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