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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기다림, 드디어 꽃 피운 문규현의 야구 인생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1-08-25 13:47 | 최종수정 2011-08-25 13:47



롯데 문규현에게 2008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다. 한 번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군에만 있었던 1년. 무슨 이유로 그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문규현은 "1군에서 백업 내야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내가 아닌 김민성(현 넥센)이 선택됐었다. 이제는 끝인가보다 생각했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야구를 포기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상황. 그 순간 머릿속에 스쳐간 것은 바로 부모님이었다. 야구선수 아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부모님 생각에 문규현은 다시 방망이를 잡았다.

부모님, 내가 땀을 흘려야 하는 이유

2011년 8월 20일은 문규현에게 '생애 최고의 날'로 기억되게 됐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군산에 계신 부모님을 비롯해 20여명의 일가친척을 부산으로 초대했기 때문이다. SK와의 경기 입장권을 준비한 것은 물론, 해운대에 위치한 근사한 호텔에 숙소도 마련해드렸고 경기 후 고깃집에서 맛있는 식사도 대접해드렸다. 문규현은 "프로선수가 된 후 처음으로 효도를 한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문규현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평소 부모님의 마음 씀씀이를 잘 알고 있었다. 아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경기장에 몰래 오셔서 조용히 경기를 보고 가시고, 전화도 잘 하시지 않는 부모님이었다. 그런 부모님에게 사직구장 그라운드에 선 자랑스런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문규현은 "식사를 하는 데 한 팬분이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서 너무 흐뭇해 하시더라"며 "부모님 앞에서 사인을 하는 나도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문규현은 "솔직히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한 적이 많았다. 2008년에도 그랬고 올시즌 초 극심한 타격부진을 겪을 때도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다. 문규현은 "지금까지 나를 위해 고생하셨는데 아들이 야구선수로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힘든 시간들을 이겨냈다"고 했다. 이어 "이제 내가 보답할 차례다. 열심히 해 더 많은 연봉을 받아 좋은 집을 마련해드리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8년을 버틸 수 있었던 요인은 재능과 성실함

문규현은 2002년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롯데에 2차 10라운드 78순위로 지명돼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프로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주전 유격수였던 박기혁이 부상으로 빠져 1군에 자리를 잡기 전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8년의 2군 생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롯데 배재후 단장은 "2군 생활은 성실함과 야구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절대 버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매년 많은 선수들이 힘든 2군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야구계에서 떠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문규현이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꼽는 공필성 수비코치는 "내가 2군 수비코치로 처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때 규현이가 입단했었다"며 "규현이는 야구 재능이 뛰어난 선수다. 하나를 가르치면 스스로 둘을 터득하는 스타일이다. 여기에 성실함까지 갖춰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1군에 올라오면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한 것이 문제였는데 지난해 안정적으로 출전기회를 보장받으며 자신이 갖고 있던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입단 때 부터 문규현을 쭉 지켜봐온 배 단장은 "2군에 있는 코칭스태프, 직원 등 모든 사람들이 규현이에 대해 소질도 있고 성실하다며 좋은 평가를 해왔다. 때문에 구단에서는 규현이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렸다"며 "규현이가 구단의 믿음에 보답하는 좋은 활약을 펼쳐줘 단장으로서 고마울 따름이다. 내년에는 연봉을 많이 올려줄 것"이라고 기분좋게 말했다.

"언젠가는 롯데의 주전 유격수 자리가 내 것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는 문규현의 야구인생, 지금부터 시작이다.


부산=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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