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진철 운영팀장은 최근 담석 증세로 검진 차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앞에 앉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스트레스로 간기능 검사상 수치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진단. 그 길로 일주일째 입원중이다. 김 팀장은 현대 유니콘스의 전성기를 이끈 스카우트 출신이다.
선수 출신 프런트로 임원까지 올라 입지전적 인물로 꼽히는 두산 김태룡 이사. 이 자리에 오기까지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18년. 소중한 것을 잃었다. 건강이다. 이상 징후는 10년 전부터 찾아왔다. 검진할 때마다 새로운 병명이 하나씩 추가됐다. 고혈압, 고지혈증, 부정맥에 협심증. 급기야 지난 7월2일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서울삼성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최고 혈압은 무려 180을 넘나들고 있었다. 생사의 고비. 김 이사는 이후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끊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많이 회복했지만 여전히 박빙의 승부를 지켜볼 때는 습관적으로 담배가 들어있던 와이셔츠 윗 주머니에 손이 간다. 그럼데도 불구, 김 이사는 수시로 2군과 일본을 오간다. 유망주 성장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울여온 노력. 멈출수가 없다.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후배 직원들은 "이사님께 시즌중 일부러 경기를 보지 마시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이사님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한다. 김태룡 이사는 '화수분 야구'라 불리는 두산의 유망주 성장·발굴의 밑거름을 다진 핵심 인물 중 하나다.
프로야구가 침체기를 딛고 르네상스를 맞이하기까지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온 프런트 직원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최고 흥행이라는 거대한 빛의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김 이사의 사례는 대다수 프런트 직원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매일 피말리는 승부에서 초래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는 야구단과 불가분의 관계다. 직업병 한 두개쯤은 기본이다.
프런트 직원. 육체적으로 힘들다. 발뻗고 쉴 틈이 없다. 20인 이하 사업장까지 확대된 주5일 근무는 꿈도 못 꿀 호사다. 주말도 명절도 없다. 시즌 중에는 월요일을 제외한 주6일 경기가 열린다. 야간경기 후 업무를 정리하고 퇴근하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다. 경기 스트레스로 소주라도 한잔 걸치면 더 늦어진다. 운영팀 직원의 경우 그나마 하루 쉬는 월요일 조차 원정경기가 걸리면 오후에 출근해 이동하는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그렇다고 스타급 선수들 처럼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 구단의 한 고참 직원은 "몸도 몸이지만 가족과의 불화에 정신병이 날 정도다. 6일에 한번씩 정기적인 부부싸움이 날 판"이라고 호소한다.
다른 직종과 달리 야구단 직원은 눈에 보이는 '성적' 스트레스가 있다. 모 기업의 지원을 받는데다 8개 구단끼리의 냉혹한 상대평가라 성적 부진 시 스트레스는 말할 것이 없다. 게다가 야구단 조직은 특수하다. 이분화돼 있다. 사장 이하 프런트와 감독 이하 선수단의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집단이 한지붕 아래 공존한다. 만에 하나 선수단과 프런트 사이에 소리가 나면 중간에 끼인 선수 출신 운영팀 직원들은 졸지에 '새우 등'이 된다. 조직원들의 구성도 특이하다. 프런트는 선수 출신이거나 야구를 아주 좋아하는 마니아급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보니 일은 자발적일 수 밖에 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 경기 승패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현장 직원들은 수시로 부상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선수가 아니니 알려지지도 않는 부상이 태반이다. 이가 부러지는 건 예사다. 훈련 보조를 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맞기도 하고 야구장에 어지럽게 뿌려진 공을 줍는 과정에서 토스한 공에 얼굴을 맞는 일도 허다하다. 치과 치료를 받는 일이 부지기수다.
현재로선 절대 업무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경기수를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늘면 늘었지 줄어들 수 없는 환경. 방법은 딱 하나 뿐, 인력 충원과 순환보직제다. 인력을 늘려 한 사람이 맡고 있는 일을 분산시켜야 한다. 또한 운영, 마케팅, 홍보, 경영지원의 4대 축을 순환시킴으로써 부담을 줄여주는 수 밖에 없다.
한화 황경연 전 단장, LG 유성민 전 단장, 한화 이한국 운영부장, 삼성 배운용 운영팀 과장. 격무와 스트레스 속에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한 프런트 직원들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추모하기 전 시급한 일은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야구단이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챙겨야 할 시급한 과제. 바로 프런트 직원의 건강과 복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