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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심판'최명용 주심이 꼽은 K-리그 최고 매너남은?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2-12-12 11:56 | 최종수정 2012-12-13 08:24


◇최명용 주심이 경기중 쓰러진 수원 염기훈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의 스킨십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허상욱 기자

2012년 K-리그 대상 최우수심판상을 수상한 최명용 울산 학성고 감독을 만났다. K-리그 최초의 승강제가 도입된 올해 심판으로서 애환도 많았다. 약속장소는 강남의 한 결혼식장이었다. 시즌 직후 선수들의 웨딩마치가 줄을 이었다. 최 감독은 오장은(수원)의 결혼식 직후 김성환(성남)의 결혼식장으로 바쁘게 이동했다. 그라운드 밖에서 심판 선생님을 마주한 선수들이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며 예를 표했다. 하나같이 반가운 기색이었다. 평일에는 학성고 사령탑으로, 주말에는 프로심판으로 일하는 최 감독이 심판의 눈으로 바라본 2012년 K-리그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놨다.


◇지난 3일 2012년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심판상을 수상한 최명용 울산 학성고 감독이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피말리는 승강제, 심판 승강제도 피말렸다

최 감독은 2006년부터 K-리그 그라운드에서 뛰어온 7년차 베테랑 심판이다. 아마심판 경력까지 합치면 족히 16~17년차다. 2010년 최우수심판상에 이어 2년만에 다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휘슬 한번에 그룹A, B가 갈리고, 강등, 잔류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분위기 속에 심판의 부담감도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심판에 대한 고과 평가도 엄격했다. 주말경기 직후 매주 월요일 8경기 전수 모니터링을 통해 판정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승부에 영향을 미친 명백한 오심의 경우 철퇴가 내려졌다. 다음경기 배정에서 제외됐다. 경기 배정을 받지 못할 경우 심적,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다. 징계 심판 및 내용은 공개되지 않지만, 심판들끼리는 표정만 봐도 안다. 3개월마다 체력테스트와 함께 A~C등급 심판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졌다. 이른바 '심판 승강제'다. A등급과 C등급의 경기수당 차이가 2배가 넘는 데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인 만큼 경쟁이 살벌하다. 다른 심판의 오심 사례를 '농반진반'으로 슬쩍 흘리는 경우까지 있었다. 분기별로 등급별 최우수심판도 선정됐다. A등급 베테랑 심판 최 감독은 올시즌 3차례 평가에서 2차례 1위에 올랐고, 올시즌 가장 많은 33경기를 소화했다. 경기 수를 보면 징계횟수가 나온다. 상주상무 이탈로 인한 경기취소, 개인사정으로 빠진 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경기를 뛰었다.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상을 주셨겠죠?"라며 웃었다.

최고 매너 감독은 김호곤

체력적으로는 선수들만큼 뛰어야 하는 주심이 가장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벤치를 조율해야하는 대기심이 가장 힘들다. 대기심을 하다보면 코믹한 에피소드도 많다. 언젠가 주심이 성남선수에게 휘슬을 분 직후 신태용 감독이 슬몃 다가오더란다. 항의를 예상하고 신경을 바짝 곤두 세운 상황, "최 감독, 운동화 좋네, 얼마 주고 샀어?" '대인배' 신 감독의 예기치못한 한마디에 웃음이 빵 터졌다.

때로는 귀를 꼭 닫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흥분한 벤치에서 판정 후 욕설을 퍼붓는 경우다. 혼잣말은 되도록 못들은 척한다. 대신 테크니컬존을 벗어나거나, 직접적인 욕설을 하는 등 규정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카드를 꺼내든다. 최 감독이 뽑은 최고의 매너 감독은 최고연장자인 김호곤 울산 감독이다. 웬만해선 심판 판정을 수용한다. 최고의 매너팀으로는 '무공해축구' 서울과 함께 제주를 꼽았다. "매너있는 박경훈 감독님의 스타일을 닮은 것같다"고 해석했다. 김한윤(부산) 조성환(전북)은 팀을 위해 심판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대드는 '터프가이'다. 그라운드밖에선 누구보다 예의바르고 착실한 선수라는 점이 '반전'이다.

좋은 심판의 제1 덕목은 스킨십

학성고 감독인 만큼 프로무대에서 제자들을 마주치게 된다. 볼 때마다 흐뭇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선 냉정할 수밖에 없다. 올시즌 마지막 성남의 홈경기 강원전에선 '애제자' 박진포에게 가차없이 '페널티킥' 파울을 불었다. 스승은 "분명히 봤다"고 했고, 제자는 "공이 떠난 후였다"고 주장했다. 12경기 홈 무승에 시달리던 성남으로서는 승리가 절실했던 상황, 스승을 향해 절박한 제스처를 취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최 감독의 휴대폰으로 한 제자가 사진을 보내왔다. '박진포가 손을 벌리고 격렬히(?) 항의하는 인증샷'이었다.


초짜와 베테랑의 차이는 경기조율 능력과 휘슬 타이밍이다. 때론 융통성도 발휘해야 한다. FC서울이 우승을 자축하던 서울-전북전, 몰리나의 선제 결승골 직후 서울 벤치, 후보선수 전원이 그라운드로 몰려들어 세리머니를 펼쳤다. "규정대로라면 전원에게 옐로카드를 줘야 맞다. 하지만 우승을 자축하는 홈경기이고 팬들의 정서를 감안해 '운영의 묘'를 발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과의 스킨십도 중요하다. 인간미를 강조했다. 쓰러진 선수를 적극적으로 일으켜주고, 유난히 거친 선수에겐 스칠 때마다 슬쩍슬쩍 구두경고를 흘린다. 선수들이 다칠 때면 누구보다 가슴아프다. 7월 성남 주장 김성환이 몸을 던지다 팔꿈치 탈구로 들것에 실려나갔다. 뼈가 드러날 만큼 참혹했다. "성환아 답답하다. 속상하다" 했더니 김성환 역시 "선생님, 저도 답답해요"하더란다. 9월 수원-포항전에선 끊임없이 부딪치는 1982년생 수비수 곽희주와 1981년생 공격수 박성호를 화해시켰다. 선후배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심판 일, 마약같아

알려진대로 국내 심판의 처우는 열악하다. 시즌 내내 술, 담배를 금기시하고, 철저히 몸을 만드는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 최 감독의 경우 고교감독의 현업과 프로심판 활동을 병행하느라 쉴틈이 없다. 그럼에도 이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최 감독은 "마약같다"고 즉답했다. "매주 월요일 경기배정을 받으면 일주일 내내 행복하다. 일주일동안 몸 만들고, 모니터링하고… 즐겁다"고 했다.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의 마음과 똑같았다. "서울-수원 슈퍼매치 등 관심경기나 TV중계 경기 심판으로 배정되면 더 설렌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철저히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팬들에게 애정어린 비판도 당부했다.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심판도 때로 실수를 한다. 실수를 줄여가고, 완벽을 향해가는 과정으로 봐달라"며 웃었다.

최 감독은 3일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생경한 경험을 했다. 소녀팬, 중년팬들의 사인요청이 쏟아졌다. 감독으로 착각했나 싶어 "저 최명용 심판인데요"라고 신분을 밝혔더니 "최 심판님 팬입니다" 하더란다.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상금 중 일부를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번주 중 대전의 한 보육원을 찾아 공약을 실천할 예정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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