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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타슈켄트]손흥민, 아직 박지성 같은 아우라가 없다

노주환 기자

기사입력 2017-09-06 13:34 | 최종수정 2017-09-06 13:37


손흥민과 박지성 스포츠조선DB

9월 5일 밤 타슈켄트에서 벌어진 우즈베키스탄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는 한국 축구사에 이렇게 기록될 것이다. '국민들이 가장 초조한 심정으로 안타깝게 바라본 경기 중 하나'. 0대0 무승부. 같은 시각 일찌감치 러시아행을 확정한 이란이 시리아와 2대2로 비겨주면서 한국이 조 2위로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을 달성했다. 그 누구도 잘 했다고 박수를 칠 경기력이 아니었다. 골을 넣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유럽파 손흥민 황희찬, 조커 이동국 염기훈 누구도 골맛을 보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한국 축구의 진면목을 러시아에 가서 보여드리겠다. 남은 9개월 잘 준비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8년 전인 2009년 6월 두바이에서 한국 축구 A대표팀이 아랍에미리트(UAE)를 격파하고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당시 한창이었던 박주영이 결승골, 떠오르는 신예 기성용이 쐐기골을 박았다. 당시 허정무호의 주축은 박지성(맨유)이었다. 한국은 1년 후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첫 원정 16강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2009년 두바이와 2017년 타슈켄트, 이 시공간의 차이에서 A대표팀의 경기력은 냉정하게 봤을 때 외연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면에서 뒷걸음질쳤다.

박지성 은퇴 이후 팀의 확실한 구심점이 없다. 박지성이 주장을 맡았을 때는 그 보다 나이 많은 선배나 후배들이 모두 박지성의 말에 귀기울였다. 박지성은 선수들의 얘기를 듣고 코칭스태프와 상의해서 팀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한국 축구는 특정 선수의 화려한 개인기로 상대를 박살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 호날두나 메시 같은 특정 선수 한두명의 개인기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없다. 결국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도 한국 축구의 색깔은 조직력과 팀워크가 될 것이다. 그 차원에서 볼 때 태극전사 23명이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게 첫번째 과제다. 해외파와 국내파, 그리고 고참과 신예들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허정무 감독은 남아공월드컵 성공의 첫번째 비결로 '신구조화'를 꼽는다. 박지성을 중심으로 위로는 이운재 안정환 이동국, 아래로는 기성용 이청용까지 한마음으로 공을 찼다.

신태용 감독에게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9개월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앞으로 10번 이상의 A매치를 치를 수 있다. 겨울 소집훈련과 본선 전 한달여 정도 훈련이 가능하다. 클럽 처럼 매일 모여서 훈련할 수 없다. 따라서 태극호의 조직력을 극대화하는데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9개월 동안 각자의 소속 클럽에서 뛰는 태극전사들의 기량이 급성장하는 걸 기대하는 건 무리다. 아직 우리가 러시아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싸울 상대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경기력 보다 약한 팀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신태용 감독은 '여우' 처럼 꾀가 많고 영리한 지도자다.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나고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맡았다. 이란전, 우즈벡전에서 연달아 무득점 무승부로 그의 축구 색깔이 달라졌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국 축구를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 수비 축구를 했다. 신 감독의 원래 색깔은 공격 축구다. 한국 축구가 러시아월드컵 본선에서 다시 원정 16강에 도전하기 위해선 신 감독이 수비 축구를 또 구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가 다시 공격 축구를 펼친다고 하더라도 16강이 보장될 수 없다. 그 만큼 월드컵 본선은 맘먹은 대로 선수들의 경기력이 구사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무대다.

우리 축구는 우즈벡전을 통해 현재 A대표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금의 경기력으로는 월드컵 본선에서 누굴 상대로도 승점 3점을 따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나마 확인한 건 베테랑 이동국 염기훈 이근호가 여전히 쓸모가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 3명의 베테랑은 나이가 아닌 경기력으로 신태용호에 보탬이 됐다. 이들이 9개월 후에도 지금 같은 몸상태와 경기력을 유지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동국은 "나에게 월드컵 본선은 너무 먼 얘기이다"고 말했다. 38세의 이동국은 자신에게 냉정하다. '왼발의 달인' 염기훈은 후반 교체 투입 이후 공격의 새로운 물꼬를 터주었다. 이근호는 선발 출전해 쉼없이 뛰어다녔다. 우즈벡 적지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이 어린 후배들을 잡아준 게 바로 이 고참들이다. 설령 이들이 아니더라도 A대표팀은 패기넘치는 젊은 선수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간판 얼굴 손흥민에게선 아직 과거 박지성의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손흥민은 나이나 평판을 감안할 때 박지성 보다 더 몸값이 비싼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손흥민이 A대표팀에서도 토트넘에서 처럼 파괴력과 무게감을 보여준다면 한국 축구는 달라질 수 있다. 그때야 말로 손흥민을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갈 수 있다. 그렇더라도 A대표팀은 신구 조화가 첫번째다. 신태용 감독의 어깨에 큰 짐이 올려졌다.
타슈켄트(우즈벡)=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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