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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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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미처 생각 못 했던 부분인데…. 솔직히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요."
지난 7일 대한항공과 한국전력의 대결. 승자는 대한항공이었다. 세트스코어 3대1. 모처럼 박기원 감독의 표정이 밝았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딱 한 명, '캡틴' 한선수(32)만 빼고 말이다. 경기 후 한선수의 눈은 붉게 젖어 들었다. "팀에 보탬이 돼야 하는데 못 해서 팀원들에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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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캡처=KBSN스포츠 방송 중계 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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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수와 눈물. 쉽게 상상이 안되는 그림이다. 최고의 세터이자 V리그에서 가장 빛나는 별, 한선수의 눈물. 그것도 챔피언결정전 승리도 아닌, 리그 3라운드에서 흘러나오다니.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고운 외모와는 달리 한선수는 무척 강한 남자다. 아니, 강한 사람이란 표현이 더 맞겠다. 강한 의지에 냉정함을 갖춘 사람. 그런 한선수가 보인 게 눈물이다. 그에게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명확한 신호다.
한선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렇다. 정교한 세트 플레이, 화려한 염색 머리, 훈훈한 외모, 성공적인 삶. 이는 밝은 면이다. 그 반대편엔 '인성 논란과 낭설'들이 있다. 빛과 그림자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좋은 말은 동기부여다. 한선수는 팬들의 응원이 좋았다. 지치고, 부상에 아파도 다시 설 수 있는 힘. 그건 '우리 한선수 잘 한다'였다. 20대의 젊은 한선수는 자신의 기사 댓글을 잘 챙겨봤다. 궁금하니까. 그리고 보면 힘이 나니까. 운동, 휴식, 경기의 반복인 삶 속에 팬들의 좋은 반응을 보는 건 한선수의 '몇 없는 낙'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 어느 순간 한선수는 '인성 논란' 속에 서있었다. 한 술 더 떠서 '한감독'이란 비아냥도 흘러나왔다. 한선수는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았다. 단조로운 삶에서 누려오던 소소한 기쁨, 하지만 이 마저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댓글을 안 보게 됐다.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선수도 마음에 상처를 받는 건 똑같으니까…." 사실 그렇게 틀어막는다고 상처를 안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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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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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올 시즌 초반 부진이 덮쳤고, 살짝 찢어진 응어리의 틈새로 눈물이 흘렀다. 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라곤 하지만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한선수 자신도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내 감정을 잘 모르겠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도 접었다.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다." 좋게 말하면 절제다. 그러나 한선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부담도 느끼고 두려움을 안다. 때론 기대고 싶고, 잠시 머리를 비워보고도 싶다. 악도 질러보고 펑펑 울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고 한선수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감정의 절제는, 어쩌면 '억압'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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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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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점에서 한선수의 눈물은 깊은 의미 지니고 있다. 억누를 새 없이 느닷없이 흘러 넘친 진심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어떤 건지 자기 자신도 모르는 복잡한 감정이지만, 분명 뜨겁고 진했다. 한선수가 슬쩍 마음을 열어본다. "가정이 생기고 아이를 낳고 조금 변한게 아닌가 싶네요." 중요한 인식이다. 이젠 기댈 곳이 있다는 뜻이 된다. 모든 걸 내려놓아도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그런 따뜻한 버팀목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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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한국배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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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변화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덕분일까. 아니면 단지 아내와 자식의 어여쁜 얼굴이 떠올라서 일까. 어쨌든 한선수가 그제서야 웃는다. "저 그래도 좋아하는 배구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어요. 부담감은 언제나 있는 건데요. 잘 이겨내서 40세까지 한 번 뛰어보려구요." 밝은 미소가 참 매력적이다. 웃으니까 비로소 한선수 답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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