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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운영 미숙으로 실망감을 안겨드려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사건은 이렇다. 14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는 대한항공과 한국전력의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맞대결이 열렸다. 이날 KOVO는 홈팀 대한항공에 흰색, 원정팀 한국전력에는 남색 유니폼을 배정했다. 그런데 한국전력의 강민웅이 착오로 붉은색 유니폼을 챙겨왔다. V리그 운영요강 제48조 1항에 따르면 팀원들과 다른 유니폼을 착용한 상태(리베로 제외)로는 경기에 참여할 수 없다. 다만, 지정된 유니폼이 도착하면 지정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경기에 나설 수 있다.
이에 한국전력은 숙소 인근의 마트 주인의 도움을 받아 퀵 서비스로 남색 유니폼을 공수 받았다. 그러나 강민웅이 받은 것은 지난 시즌 등록했던 민소매 유니폼이었다. 한국전력은 경기감독관에게 민소매 유니폼을 착용해도 되는지를 문의했고,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강민웅은 팀이 1-4로 밀리던 1세트 초반 경기에 투입됐다. 이를 본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항의를 했지만, 경기위원장은 문제없다고 판단해 경기를 진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결국 경기는 대한항공이 14-12로 앞선 상황에서 중단됐다. 현장에 있던 경기운영위원과 심판위원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논의 끝에 경기를 중단시킨 것. 결국 강민웅은 부정선수로 간주돼 퇴장당했고, 한국전력은 11점이 깎여 강민웅이 투입되기 이전까지의 팀 득점이던 1점으로 돌아갔다. 대한항공은 잘못이 없다고 판단돼 그대로 14점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25분 가까이 경기가 중단됐다. 현장을 찾은 팬들은 시간을 도둑 맞았고, 이 모든 상황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KOVO는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상벌위원회 이번 사태에 원인 제공을 한 박주점 경기감독관에게 올 시즌의 남은 경기 출전정지, 보조 역할에 소홀했던 주동욱 심판감독관에게 5경기 출전정지와 50만원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최재효 주심과 권대진 부심에게는 각각 3경기 출전정지와 30만원 제재금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예고된 인재'라고 말하고 있다. 뿌리 채 바로잡지 않으면 언제든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규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경기가 중단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열린 대한항공과 한국전력의 경기에서 박기원 한국전력 감독이 세 번째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KOVO 규정에 따르면 한 세트에 두 차례의 오심을 잡아냈다 하더라도 동일 세트에서 3회 비디오판독은 불가하다. 그러나 이 점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감독관과 심판이 비디오 판독 요청을 받아줘 결국 사후 징계를 받았다.
경기 운영 미숙으로 발생하는 어처구니 없는 아마추어적 해프닝. 이에 대해 한 배구인은 "위원장들도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것 같다"며 "몇 년 전부터 교육 강화를 요구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태만을 꼬집었다.
의례적이 아닌 실질적인 교육 시간을 늘려야 한다. KOVO 관계자는 "매년 컵 대회와 시즌 개막 전에 교육을 실시한다. 라운드가 끝난 뒤에도 반나절 가량 교육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프로리그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인재를 막기 위한 예방 조치가 시급한 시점이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