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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4년 동안 김진희 씨는 김황태의 곁을 지켰다.
김황태는 아내의 헌신 속에 '공식적으로 센강을 헤엄친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도전과 의지로 패럴림픽을 빛낸 장애인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김황태를 3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만났다.
김황태는 지난 2일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PTS3 등급 경기에서 1시간24분01초를 기록, 11명 중 10위를 했다.
센강에서 750m를 헤엄치고, 사이클 20㎞, 육상 5㎞ 코스를 달린 그에게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센강을 헤엄쳐 나오는 것만으로도 목표를 이뤘기 때문이다.
김황태는 "사전 연습 때는 유속이 느렸는데, 본 경기 때는 더 빨랐다"며 "첫 번째 다리 부근 유속이 굉장히 빨랐다. 그 부분을 거슬러 올라갈 때 힘들었다. 모든 영법을 써봤는데 답은 배영이었다"고 떠올렸다.
두 팔이 없는 김황태는 자유형과 평영에 비해 느리고, 힘도 많이 드는 배영으로 헤엄치다 보니 근육에도 무리가 갔다. 사이클과 육상 기록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황태는 "살아남는 게 목표였다. 지난해 사전 대회까지 두 번이나 센강에서 살아남았으니 만족한다"며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긴 하지만, 물이 생갭다 맑고 투명했다"며 웃었다.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파리 시내에서도 김황태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김황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A)로 많은 연락을 받았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2000년 8월 사고를 당한 뒤 1년 동안 절망에 빠져 있던 김황태는 스포츠를 통해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그는 패럴림픽 출전을 목표로 육상, 노르딕스키,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에 도전했다.
그러나 쉽게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예기치 못한 부상이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두 팔이 없는 선수가 경쟁할 수 있는 스포츠등급 종목도 많지 않았다.
김황태는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심정으로 트라이애슬론 선수로 전향했다.
이번에도 아내 김진희 씨가 김황태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김진희 씨는 김황태의 핸들러(경기 보조인)다. 종목과 종목 사이 경기복 환복과 장비 착용 등을 돕는다.
트라이애슬론은 트랜지션(다음 종목 준비 과정) 시간을 기록에 포함한다.
김황태는 "트랜지션에서 5초 늦어지면 다른 데서 만회해야 한다. 그만큼 많은 힘이 들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진희 씨는 "자연스럽게 보호자로 같이 지내면서 핸들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받았다"며 "같이 있으니까 심리적으로도 안정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접점이 많다 보니, 둘은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곧 화해한다.
김황태는 "24시간 같이 있으니까 하루에 열댓 번 다툴 때도 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하지만 잘 되려고 하는 거니까 이해하고 화해한다"고 했다.
울릉도에 사는 친구의 소개로 7년 동안 만났고, 김황태의 사고 뒤에 부부의 연을 맺은 둘 사이에는 다툼에도 금이 가지 않은 굳건한 믿음이 있다.
김진희 씨는 "남편은 잘 헤쳐 나가는 사람이니까, 둘이 같이 잘 버텼다"고 긴 시간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2일 경기를 마친 뒤 김황태는 밝게 웃다가, 아내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김황태는 "아내가 부모님이 고생하신 얘기를 하면서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삶이 이기적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아내는 항상 희생했다. 2007년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항상 주말에 나는 집을 비웠다. 딸에게도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김진희 씨는 "이제는 남편이 편안하게 운동했으면 좋겠다"며 "가족과도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가족과의 시간'을 염두에 둔 김황태도 "패럴림픽 도전은 이번이 끝일 것 같다"고 밝혔다.
패럴림픽 기간 경기에 집중하느라 선수촌에서만 지냈던 김황태는 출국을 앞두고서야 아내, 스태프들과 함께 간단하게 파리 시내를 둘러봤다.
김황태는 "한국에 돌아가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싶다"고 껄껄 웃었다.
김황태에게는 다른 조력자도 있었다.
그는 트라이애슬론 도전을 결심한 뒤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진흥부 문재홍 매니저에게 다짜고짜 연락했다.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데 연맹이나 협회가 당시엔 없어 체육회의 도움이 필요했다.
문재홍 매니저는 장비를 빌리고, 후원사를 구하러 다녔다.
비장애인 트라이애슬론 1세대 출신인 김정호 감독도 힘을 보탰다.
김 감독은 사전연습 때 김황태와 함께 센강을 헤엄쳤다.
김황태는 "나는 한국인 최초로 센강에서 헤엄쳤고, 감독님은 두 번째로 헤엄친 사람"이라고 웃었다.
김황태의 바람은 하나다.
한국 트라이애슬론 패럴림픽의 역사가 그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김황태는 "태권도 주정훈 선수가 도쿄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뒤 선수가 많이 유입됐다. 올해 5월 대한장애인트라이애슬론연맹이 창립됐는데 아직 정가맹단체가 아니다"라며 "나를 보면서 많은 선수가 도전했으면 한다. 아울러 지원도 늘어났으면 한다"고 바랐다.
cycl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