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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 선수에게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말해줬다. 왜냐하면 상화에게 자국 올림픽에서 엄청난 부담감과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담감을 이기고 꾸준한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상화를 계속 우러러 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다이라 나오)
이상화는 15조 아웃코스 스타트라인에 섰다. 일본 고 아리사와 나란히 경쟁했다. 14조의 고다이라가 인코스에서 36초94 (100m 10초26), 올림픽기록으로 1위로 오른 직후다. 이상화가 소치에서 세운 올림픽 기록 37초28을 넘었다. 이상화는 100m 구간에 승부수를 던졌다. 10초20의 기록으로 통과했다. 100m 기록이 고다이라보다 빨랐다. 7000여 안방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속에 마지막 아웃코스를 빠져나왔다. 혼신의 역주를 펼쳤지만 종속에서 고다이라보다 부족했다. 37초33, 단 0.39초가 모자랐다. 은메달이었다.
메달색이 결정된 직후 두 절친은 태극기, 일장기를 어깨에 두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세계 정상의 한일 스케이터는 서로를 향한 존경심을 표했다. 이들의 우정은 아름다웠다. 아래는 기자회견 일문일답이다.
강릉=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1000M 은메달 후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고다이라] 그당시 했을 때는 2등이었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늘 1등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제가 불필요한 데 신경을 안쓸 필요가 있었다.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주안점을 둔 것은 다른데 신경안쓰는 것이었다. 코치가 3일간 도움 주셨다. 1000M에서는 야마다상과 함께 경기를 준비했다. 이후 500M에 집중훈련했다.
-'주장 징크스'를 극복하고 여자빙속 첫 금메달을 땄다.
[고다이라]제가 금메달을 따게 됐다. 여러 종목 보면서 어떤 선수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봤다. 하뉴같은 경우 금메달 땄다. 그를 통해 힘을 얻었다.
-금메달 바치고 싶은 사람은?
[고다이라]저희 부모님!
-고다이라 선수, 전통 동양무술을 스케이팅에 접목시킨 것같은데
접목은 아니고 힌트를 얻었다. 많은 것을 배웠다. 이게 제 스타팅 스타일에 도움을 줬다. 전통무술은 비결은 아니었지만 많은 분들 조언을 통해 최고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 스케이팅 스타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상화 선수,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인지,
[이상화]기회는 있을 것같다. 섣불리 은퇴를 말하긴 그렇다. 경기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경기 끝난 후 서로 포옹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
[고다이라]저는 첫번째로 상화선수에게 잘했어!라고 한국어로 말했다. 왜냐하면 상화선수에게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부담감을 이기고 꾸준한 노력으로 여기까지 온 상화를 계속 우러러 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상화]저는 이선수랑 소치부터 함께했다. 어떤 메달 따든 간에 축하를 해줬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1500, 1000M도 타고 500M 탄 부분을 리스펙트한다고 했다.
-관중 환호 받으면 펑펑 우셨다.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상화]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제가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었다. 500M 부담감을 다 내려놓을 수 있어서 저에 대한 선물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올림픽을 보면서 저와 이선수 둘이 달려왔다. 이제 정말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다 작년에 부상으로 초가 나오기 힘들었다. 1년반이 걸렸다. 올림픽을 위해서 100M 빨리 나온 것에 만족한다. 37초 초반 기록이지만 2등 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이 됐다.
-서로의 장단점은
[고다이라]상화는 항상 친절하다 3년 전에 월드컵 레이스에서 1등한 적 있다. 직후 네덜란드 가야했는데 공항으로 가야했는데 상화선수가 택시비를 내주셨다. 제가 이겨서 기분 안좋을 수 있는데 공항가는 택시도 잡아주고 비용을 내줘서 기분이 좋았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스케이터로서도 훌륭한 선수다. 제친구라고 생각한다.
[이상화]너무 귀엽다.나오가 한국에 놀러온 적 있다. 2007년에. 절친했고 한국에도 초대할 만큼 사이가 좋았다. 한국까지 왔는데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고 친했다. 나오와 시합했을 때 기분 나쁜 적은 없었다. 제가 1등하고, 나오가 1등하고... 저는 1000M를 타는 이유는 500을 탔는데 나오는 1500까지 탔다. 그것까지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리스펙트 할 수 있었다. 뒷바퀴를 어떻게 저렇게 잘 버틸까. 자기 관리를 너무 잘한다. 나오와 소치올림픽 직후 이야기했다. 평창에서는 네가 1등하고 내가 2등하겠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1등 너하고 내가 2등할게 농담했는데 정말 2등했다. 저희는 추억이 많다. 누가 잘탔든 못탔든 격려를 서로 많이 해줬다. 남다른 스케이터다. 일본 가면 제가 좋아하는 선물을 많이 해준다. 제가 일본 식품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사먹고 그러는데 택배도 서로 자주 주고 받는다. 저는 한국 식품을 보내주고 그런 추억이 많다. 단점은 없다.
-이상화 금메달도 있고 은메달도 있고 단거리 종목에서 출중한 선수로 유지하고 계신다. 고다이라는 네덜란드 훈련했다. 네덜란드에 대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이상화]저는 네덜란드라는 나라 좋아하고, 그 나라 자체가 스피드스케이팅 인기가 굉장히 많다. 우리도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오가 일본 떠나 네덜란드 운동하면서 좋아진 걸 느꼈다. 그래서 이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다. 정상에 같이 있으면 서로 느는 것은 당연하다. 라이벌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이자리에 함께 할 수 있다. 서로 기록이 빨라졌다. 그래서 좋아요.
[고다이라]소치에서는 전력을 다했음에도 메달을 딸 수 없었다. 이후 네덜란드 유학을 갔다. 제 계획이다. 거기서 문화를 배우고 싶었다. 2년간 유학했다.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코치, 가족 없이 홀몸으로 갔다. 마리안느와 자니가 네덜란드에서 제게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었다. 카롤리나, 일레인 뷔스트 등 많은 선수들이 저를 지지해줬고 제게 가족같은 사람이 돼주었다. 그 경험 덕분에 제 삶이 바뀌었다. 네덜란드 도착한 직후에 아버지가 이메일 보내셨다. 나오의 삶이라는 것은 생명이라는 것은 신이 주신 선물이니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살아라고 하셨다. 이 말이 저를 지탱해준 격언이자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말이다.
-2022년 베이징에서 다시 함께 경쟁해보고 싶은지
[고다이라] (한국어로) 몰라요
끝나고 베이징까지 가겠나. 제가 하면 한다고 했어요. 그땐 정말 재밌게 넘겼는데 질문이 나왔네요. 올림픽 끝났으니 제대로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