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하늘숲길트레킹

스포츠조선

[공부하는 선수]서울대 야구부 이정호"야구 위해 공부했다"

기사입력 2014-11-27 17:54 | 최종수정 2014-11-28 09:05

[포토]
◇서울대학교 '공부하는 선수' 이정호 덕수고 시절 당당한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던 이정호는 '공부하는 야구선수'로 불리며 당당히 서울대에 합격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다.강의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정호.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1.25
[포토]
야구 명문 덕수고에서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던 이정호는 '공부하는 야구선수'로 불리며 당당히 서울대에 합격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1.25

서울대 좌완투수 이정호(20)는 야구 명문 덕수고 우익수 출신이다. 2년전인 2012년 말 체육특기생이 아닌 수시전형을 통해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일반학생들과 똑같이 경쟁했다. 엘리트 야구선수 첫 쾌거였다. 덕수고에서 타율 3할대를 치던 에이스의 서울대 진학은 스포츠계 안팎의 핫이슈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지난 25일 서울대 체육관 강의실 앞에서 앳된 얼굴의 공부하는 야구선수 이정호를 마주했다.

서울대야구선수이정호
야구를 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했다

소년 이정호는 늦게 배운 야구의 손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6학년때 동네야구를 시작했다. 처음 휘두른 배트로 홈런을 쳤다. 테니스공으로 작은 구장에서 친 홈런이었지만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때까지 리틀야구를 하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청량중학교 야구부에서 정식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찬성했지만, 어머니는 반대했다. 아들의 열정에 못이겨, 조건부로 운동을 '허'했다.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절대 들어서는 안된다. 야구를 열심히 하는 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야구를 시작하고 첫 시험에서 성적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가위로 유니폼을 싹둑싹둑 잘랐다. "울면서 각서를 썼다. 성적이 떨어지면 야구를 그만 두겠다고…. 이후로 한번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모두 공부하는 분위기에서 나홀로 책상머리에 앉는 데는 굳은 의지가 필요했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휩쓸릴 뻔한 적도 많았다. 시험기간에 놀러가자고 하면 가끔 따라갈 때도 있었다. 그래도 금방 마음을 정리했다"며 웃었다. 야구를 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했다.

야구명문 덕수고에 진학했고,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코피를 쏟는날도 많았다. 7시반에 등교해 점심 먹고 운동한 후 다시 7교시까지 수업을 받았다. 오후 4시부터 옷을 갈아 입고 운동을 했다. 시험기간에는 야간 훈련을 하지 않았다. 7대3의 황금 밸런스를 유지했다. "보통때는 야구 7, 공부 3이었다. 시험기간에는 공부 7, 야구 3이었다. 오후 운동만 하고 야간훈련 대신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했다."

가장 신나는 날은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다. 밤 12시까지 원없이 야구를 했다. "정말 행복했다. 좌익수 우익수 포지션을 오갔는데 허슬 플레이를 좋아했다. 동료들이 타격 훈련을 할 때 외야에서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다이빙 캐치를 했다. 미친 놈처럼 뛰어다녔다. 정말 좋아서, 미쳐서 했다"며 웃었다. "야구만 하다 보면 , 가끔 야구를 싫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직업으로 삼고 가야하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즐겼던 것 같다. 공 하나 잡는 것, 치는 것 매 순간이 소중했다"고 말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명문 덕수고의 주전 외야수로 뛰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팀에서 혼자 공부를 했다고 하면, '왕따' 당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신다. 적어도 내 동기들은 시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야자(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으면 동료들이 빵과 우유를 슬몃 건네고 훈련하러 가곤 했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어머니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이정호에게 공부는 습관이었다. "공부의 맛을 일단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학을 열심히 했다. 일반학생이 '학생선수'인 내게 수학문제를 물어보러 올 때도 있었다. 열심히 설명해주고 친구가 이해됐다고 하면 묘한 희열도 느꼈다"며 웃었다.

서울대야구부이정호
서울대야구선수이정호
이광환서울대야구부감독
◇LG, 한화 명장 출신 이광환 감독은 공부하는 선수들의 서울대 야구부를 이끌고 있다. 백전노장 이 감독은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다. 운동장 구석구석을 살피고 직접 수도꼭지를 척척 고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공부하는 야구선수들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포토]
서울대학교 '공부하는 야구선수' 이정호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4.11.25
공부와 운동, '7대3' 황금 밸런스

서울대 진학 후에도 공부와 운동의 밸런스는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정호는 전공인 체육학뿐 아니라 생물 등 과학 과목에 관심이 많다. "이번 학기엔 법의학, 질병 관련 교양 과목을 듣는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아직은 과학 과목을 좀더 듣고 싶다"며 웃었다. 이정호는 겸손했다. 공부와 운동을 완벽하게 잘하는 선수라는 시선에 손사래 쳤다. "야구계에서 처음으로 공부를 하고,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로 주목받았지만, 둘다 100% 잘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열심히 병행한 것은 맞지만, 둘다 완벽하게 잘했다고는 볼 수 없다. 공부 운동을 둘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 선수 정도로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야구선수' 이정호는 공부의 길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어떤 종목이든 현역 선수 생활은 길어야 40세까지다. 80세를 사는 세상에서 인생의 절반이 남았는데 그것까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공부해도 나쁠 것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단 한줄의 책을 읽더라도 공부는 '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LG, 한화 등 프로 명장 출신 이광환 감독이 이끄는 서울대 야구부는 선수 각자 수업이 끝난 후에야 훈련을 시작한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체육관 앞 야구장엔 선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일주일에 3~4번 자신의 훈련시간을 직접 정한다. 수업이 끝난 후 각자 정한 시간에 맞춰 훈련한다. 이 감독이 프로시절부터 주창한 신바람 '자율훈련'이다. 선수 전원이 모이는 것은 화요일 자체 청백전과 토요일 주말 경기 2번이다. 이 감독은 "우리 팀은 1번이 공부, 2번이 과외 등 알바, 3번이 야구, 4번이 데이트"라고 했다. "무조건 공부가 1번이다. 학점 3.5가 안되는 선수들은 아웃이다. 게임에 내보내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야구는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들 죽어라 공부한다"고 했다.

올해도 '공부하는 선수'들로 이뤄진 서울대 야구부에게 1승은 머나먼 길이다. 이정호는 "그래도 내용면에서 많이 발전했다"며 웃었다. "올시즌 역대 최다 득점 11점을 올렸고, 동경대와의 교류전에서도 1대3으로 대등한 경기끝에 패했고, 1이닝 4점의 최다득점 기록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정호는 우리팀 에이스다. 엘리트 선수가 공부를 해서 서울대에 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데…"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감독의 조련 아래 외야수 이정호는 투수로 전향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미다. 2년간 치열하게 공을 뿌렸다. "엘리트선수 출신이 정호뿐이라서, 투수를 시키게 됐는데 정말 많이 늘었다. 투구폼 한번 보고 가시라." 백전노장 이 감독이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