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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리듬체조의 새 역사다. 대한민국 리듬체조 역사상 가장 기쁜 날이다. 연재의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을 축하한다.
경기를 보는 내내 내가 뛰는 것도 아닌데 중계석에서 온몸이 움찔움찔하면서 땀이 났다. 긴장하면서 봤다. 터키세계선수권 직후 시차도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안게임 팀 경기 은메달을 목에 건 직후였다. 힘든 스케줄이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 출신으로서 그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더 긴장됐다. 그런데 첫 종목 곤봉을 보고 안심이 됐다. 정말 당차게 하더라. '대인배'가 됐다. 경기의 성패는 첫경기에서 가늠할 수 있다. 첫 종목 곤봉에서 흔들림없이 18점대를 받으면서, 이대로 가면 되겠다는 확신이 왔다. 두번째 리본도 진짜 잘했다. 전날예선에선 마무리 동작, 마지막 발로 당기는 부분이 살짝 엉겼다. 결선무대에서는 1%의 흠결도 없이 깔끔했다. 하룻새 몸은 더 가벼워지고 기술은 더 정확해졌다. 회전과 피봇도 가벼웠다. 세번째 후프 종목은 걱정 안했다.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땄고, 연재가 올시즌 가장 좋은 성과를 얻어낸 종목이기 때문이다. 후프에서도 18점대를 받고 나니 경쟁자들과 차이가 확 벌어졌다. 마지막 종목만 남은 상황, 라인 밖으로 나가는 실수를 한다 해도 경쟁자들이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됐다. 안심이 됐다. 마지막 볼에서 실수가 나온 던지기는, 던지는 순간 알았다. 평소보다 가깝게 볼이 떨어지겠다 싶었다. 좀더 뒤로 던져야 했는데 앞으로 던졌다. 빨리 판단해서 그냥 손으로 잡았으면 감점이 적었을 것이다. 리듬체조에서 손이 아닌 신체부위, 시야밖으로 수구를 잡을 경우 0.2점의 가산점이 있다. 그 0.2점만 버리면 되는데, 순간적으로 팔로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같다. 그러나 실수보다,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실수 이후다. 곧바로 연결동작으로 들어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침착한 연기를 이어갔다. 그런 대범함이 바로 경험의 힘이다. 결선무대에서 어린선수들은 실수하면 당황해서 더 큰실수를 하는 모습이 많았다. 지난 4년간 수많은 국제경기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연재는 위기관리에도 노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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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연재는 귀여운 외모만큼 애교도 많고 아기같다. 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프로다. 매트위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낸다. 2일 개인종합 결선때는 전날보다 관중도 훨씬 많았다. 부담이 될 수 있었는데 그걸 역이용하더라. 관중들의 기를 받아 더 화이팅해줬다. 너무너무 기쁘고 만족스럽다. 내가 베이징올림픽 본선 무대에 첫 출전할 때까지만 해도 리듬체조는 대중에게 낯선 종목이었다. '리본체조'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랬던 리듬체조 불모지 한국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나왔다는 것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덕분에 꿈나무도 많이 늘었고, 정말 뿌듯하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데 나도 눈물이 왈칵 솟더라. 선수라면 누구나 시상대에 올라서는 꿈을 꾸지만, 리듬체조가 국제대회에서 애국가를 울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리듬체조 역사에서 가장 기쁜 날이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선수가 안나올 수도 있다. 손연재 이후에 대한 준비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꿈나무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뒤를 이을 선수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리듬체조 전용체육관도 없다. 꿈나무들의 러시아 전훈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내 바람은 후배들이 성장할 때까지 연재가 좀더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다.
'기특한 후배' 연재에게 다시한번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신수지(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MBC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