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신수지칼럼]손연재의 기적같은 성장,땀과 눈물 보였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10-03 10:32


손연재가 마침내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승전이 2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렸다. 우승을 차지한 손연재가 시상식에서 금메달에 입을 맞추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4.10.02/

대한민국 리듬체조의 새 역사다. 대한민국 리듬체조 역사상 가장 기쁜 날이다. 연재의 대한민국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을 축하한다.

경기를 보는 내내 내가 뛰는 것도 아닌데 중계석에서 온몸이 움찔움찔하면서 땀이 났다. 긴장하면서 봤다. 터키세계선수권 직후 시차도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안게임 팀 경기 은메달을 목에 건 직후였다. 힘든 스케줄이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 출신으로서 그 상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더 긴장됐다. 그런데 첫 종목 곤봉을 보고 안심이 됐다. 정말 당차게 하더라. '대인배'가 됐다. 경기의 성패는 첫경기에서 가늠할 수 있다. 첫 종목 곤봉에서 흔들림없이 18점대를 받으면서, 이대로 가면 되겠다는 확신이 왔다. 두번째 리본도 진짜 잘했다. 전날예선에선 마무리 동작, 마지막 발로 당기는 부분이 살짝 엉겼다. 결선무대에서는 1%의 흠결도 없이 깔끔했다. 하룻새 몸은 더 가벼워지고 기술은 더 정확해졌다. 회전과 피봇도 가벼웠다. 세번째 후프 종목은 걱정 안했다.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땄고, 연재가 올시즌 가장 좋은 성과를 얻어낸 종목이기 때문이다. 후프에서도 18점대를 받고 나니 경쟁자들과 차이가 확 벌어졌다. 마지막 종목만 남은 상황, 라인 밖으로 나가는 실수를 한다 해도 경쟁자들이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됐다. 안심이 됐다. 마지막 볼에서 실수가 나온 던지기는, 던지는 순간 알았다. 평소보다 가깝게 볼이 떨어지겠다 싶었다. 좀더 뒤로 던져야 했는데 앞으로 던졌다. 빨리 판단해서 그냥 손으로 잡았으면 감점이 적었을 것이다. 리듬체조에서 손이 아닌 신체부위, 시야밖으로 수구를 잡을 경우 0.2점의 가산점이 있다. 그 0.2점만 버리면 되는데, 순간적으로 팔로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같다. 그러나 실수보다,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은 실수 이후다. 곧바로 연결동작으로 들어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침착한 연기를 이어갔다. 그런 대범함이 바로 경험의 힘이다. 결선무대에서 어린선수들은 실수하면 당황해서 더 큰실수를 하는 모습이 많았다. 지난 4년간 수많은 국제경기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연재는 위기관리에도 노련했다.

지난 4년간 연재가 보여준 성장은 정말 놀랍다. '말도 안되는' 성장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안에 이만큼 순위를 끌어올린 건 기적적인 일이다. 정말 대단하다. 박수를 쳐주고 싶다. 단내나는 러시아 훈련을 이겨낸 결과다. 러시아 전지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느끼고 온 나로서는 연재가 흘려온 땀의 양이 족히 짐작된다. 연재가 처음 러시아에 갔을 때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겠다"고 연락한 적이 있다. 국내와 비교도 안될 만큼 힘든 상황이다. 상상할 수 없이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 모든 시련을 이겨냈기 때문에 오늘의 연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대견하다. 그런 노력들이 오늘 시합에서 그대로 보였다.


인천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승전이 2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렸다. MBC 해설위원 신수지가 김성주 아나운서와 경기 중계를 하고 있다.
인천=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4.10.02/
연재는 주니어때부터 이미 장래가 보였던 후배다. 갖고 있는 기량, 끈기, 눈빛, 열정에서 가늠이 됐다. 주니어때 이미 세계대회에서 입상했고, 그때부터 '종주국' 러시아에서도 눈여겨봤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내가 러시아 노보고르스크에서 처음으로 훈련할 당시 비너르 러시아체조협회장이 '중학생' 연재를 보고 "후배가 예쁘다. 나중에 크면 우리 체육관에 훈련할 수 있게 받아주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 국가대표들이 훈련하는 노보고르스크센터는 너도나도 가고 싶어하는 곳이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내 경험을 소개하자면, 통역사를 대동하고 들어가 어렵사리 비너르 러시아체조협회장을 만났다. 처음엔 눈치를 보면서 매트 밖에서 연습했다. 비너르가 눈여겨보다가 리본 연기를 시키더니 "여기 온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올림픽 무대에 한번 서보는 것이 꿈"이라고 했더니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꿈이었다. "어마어마한 기회를 줄테니 내가 시키는 모든 대회에 참가하고, 코치의 지시에 무조건 따라라. 그렇게 1년 하면 올림픽 티켓을 딸 수 있다"고 했다. 이후 러시아에 상주했다. 가끔 러시아 전훈이 꼭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리듬체조 종주국' 러시아는 작품 수준이 다르고, 훈련 시스템이 다르다. 세계적인 에이스들과 날마다 경쟁하고, 훈련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좋은 작품을 받을 수 있고, 구사할 수 있는 난도, 기술 레벨도 달라진다. 룰 변화나, 기술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움도 많다. 동양인 선수가 하나도 없던 때였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았고, 왕따도 당했고, 가족의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도 많이 울었다. '악으로 깡으로' 절실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울다보니 독기만 남더라.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훈련했다. 발목 인대가 나간 줄도 몰랐다. 그렇게 힘들게 끌어온 대한민국 리듬체조의 바통을 '당찬 후배' 연재가 잘 이어줘서 너무너무 고맙다.

평상시 연재는 귀여운 외모만큼 애교도 많고 아기같다. 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프로다. 매트위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버텨낸다. 2일 개인종합 결선때는 전날보다 관중도 훨씬 많았다. 부담이 될 수 있었는데 그걸 역이용하더라. 관중들의 기를 받아 더 화이팅해줬다. 너무너무 기쁘고 만족스럽다. 내가 베이징올림픽 본선 무대에 첫 출전할 때까지만 해도 리듬체조는 대중에게 낯선 종목이었다. '리본체조'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랬던 리듬체조 불모지 한국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나왔다는 것 어마어마한 발전이다. 덕분에 꿈나무도 많이 늘었고, 정말 뿌듯하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데 나도 눈물이 왈칵 솟더라. 선수라면 누구나 시상대에 올라서는 꿈을 꾸지만, 리듬체조가 국제대회에서 애국가를 울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오늘은 대한민국 리듬체조 역사에서 가장 기쁜 날이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다시는 이런 선수가 안나올 수도 있다. 손연재 이후에 대한 준비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꿈나무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뒤를 이을 선수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리듬체조 전용체육관도 없다. 꿈나무들의 러시아 전훈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내 바람은 후배들이 성장할 때까지 연재가 좀더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다.

'기특한 후배' 연재에게 다시한번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신수지(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MBC해설위원)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