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쑨양'361°' 박태환 도발 광고가 더 씁쓸한 이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4-09-15 07:42






"박 선생,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기록을 깼다. 대단했다.(한국어) 그런데 어쩌죠. 그 기록 내가 깨버렸는데."

"박 선수(한국어), 이번 대회 수영장도 네 이름을 따서 지었다던데, 그거 실력과 상관없죠?(한국어)"

인천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스포츠브랜드 '361°'가 내놓은 쑨양의 도발 광고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15초 분량의 4가지 버전 광고에서 쑨양이 라이벌 박태환을 거명하며, 서툰 한국어로 조롱하듯 이야기하는 CF를 접한 국내 팬들은 일제히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추어 스포츠인 수영계에서 도발 광고는 이례적이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쉴새없이 마주치는 월드클래스 수영선수 사이에는 '리스펙트(respect, 존중)' 문화가 자연스럽다. 마이클 펠프스, 라이언 록티 역시 경기 전후 서로에게 덕담을 주고받을 뿐 자극하거나 도발하는 경우는 드물다. 박태환 역시 광저우아시안게임, 상하이세계선수권, 런던올림픽에서 쑨양을 마주칠 때마다 "좋은 선수와 함께 레이스를 하게 돼 기쁘다" 식의 덕담을 이어왔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단골처럼 이어져온 쑨양과의 경쟁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박태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 자신의 최고기록을 깨는 것이 목표다. 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목표다. 좋은 기록을 세우면 메달은 따라올 것이다."

박태환은 변함없는데, 쑨양이 변했다. 4년전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쑨양은 '디펜딩 챔피언' 박태환을 향한 존경심을 표했다. 이후 박태환의 헤드셋, 수건 패션까지 쫓아할 만큼 친밀감을 표했었다. 런던올림픽에서도 박태환과 '아름다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온 쑨양의 느닷없는 '박 선생식'도발은 그래서 더 낯설다. 중국 언론은 '도발 광고' 논란에 대해 '중국 팬들은 기대감을, 한국인들은 불쾌감을 표하고 있다. 지난 8월 호주 훈련때 찍은 이 CF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쑨양이 런던올림픽때의 체중 92㎏보다 적은 90㎏까지 감량했고, 단거리 스피드도 좋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중국의 스포츠브랜드 '361°'는 인천아시안게임 스포츠용품 공식후원사다.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을 중국 스포츠용품사가 공식후원하게 됐다. 자본의 힘은 무섭다. 인천아시안게임에 1500만달러 이상을 후원하는 최고등급 후원사는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대한항공, SK텔레콤, 신한은행 등 국내 대기업 5개사, 그리고 중국 스포츠 브랜드 '361°'다. 인천아시안게임 성화봉송주자는 물론 지원스태프,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361°'로고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있다. 국내 스포츠용품사들이 주판알을 튕기며 머뭇거리는 새 '361°'은 한국의 안방, 인천아시안게임에 거침없이 베팅했다. 쑨양의 박태환 도발 광고 역시 다분히 전략적이다. 중국 자본의 힘을 활용해, 인천아시안게임 최고의 빅매치로 꼽히는 '박태환 VS 쑨양'의 대결 구도에서 '자국선수' 쑨양에게 대놓고 힘을 실어줬다.


'디펜딩챔피언'박태환은 개의치 않는다. 묵묵히 훈련에만 전념하고 있다. 지난달 말 마지막 호주 전훈을 마치고 입국한 후 인천의 한 호텔에서 마이클 볼 전담팀 감독과 함께 마무리 조정훈련에 돌입했다. 언론 접촉도 모두 끊은 채, 추석 연휴 내내 서울 집에도 들르지 않고, 인천에서 비밀훈련에 전념했다. 쑨양의 도발 광고에 대한 입장은 당연히 '무대응'이다. '박태환의 멘토'인 볼 감독은 "박태환은 올해 2월 뉴사우스웨일스대회 자유형 100m에서 한국최고기록을 작성했고, 6월 김천대표선발전 자유형 200m에서 시즌 세계 1위 기록을 작성했으며, 8월 팬퍼시픽대회에서 자유형 400m 시즌 세계1위 기록을 달성했다. 전종목에서 차례로 기록 향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쑨양은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361°', 야쿠르트 등 후원사 로고가 가득 새겨진 수영모를 쓰고 물살을 가른다. 박태환의 수영모에는 자신의 이니셜 로고 'T.H.PARK'만이 빛난다. 박태환에겐 '361°'처럼 든든한 용품 후원사가 없다. 믿을 건 자신과 훈련량 뿐이다. 팬퍼시픽수영선수권 400m 금메달 시상식에서 박태환은 태극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스스로 구해, 꺼내 입었다. 박태환은 태극기, 태극마크의 자존심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쑨양의 도발 광고보다 씁쓸한 것은 스포츠 스타, 스포츠 영웅, 자국에서 열리는 스포츠 이벤트의 가치를 외면하는 자본의 무심함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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