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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토비 도슨의 고국 사랑, '평창 열정'에 감동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07-06 12:57 | 최종수정 2011-07-06 13:01


◇토비 도슨이 취재진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고 있다. 더반(남아공)=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토비 도슨(33)의 '평창 열정'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한국은 그를 버렸지만, 그는 한국을 사랑했다. 2일(이하 한국시각) 뉴욕에서 남아공 더반으로 날아온 그는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온몸으로 뛰었다.

미국에서 이미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깔끔하게 해 왔다. 연일 이어지는 리허설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5일에는 홀로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했다.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의 기념촬영 공세도 마냥 행복하다. 단 하나, 한국말을 모르는 것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는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김수철에서 토비 도슨이 된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김수철은 3세 때 자유시장에서 길을 잃었다. 끝내 부모를 찾지 못했다. 고아원에 지냈다.

5년 뒤 새로운 가정이 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푸른 눈의 미국인 부부에 입양됐다. 콜로라도에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이름은 토비 도슨이었다. 내성적이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왕따'였다. 중국인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스키강사인 부모는 아들을 걱정했다. 스키를 시켰다. 달라졌다. 비로소 자신을 찾았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스키 남자 모굴에서 동메달을 거머쥐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듬해 생부와 재회했다. "그동안 아버지가 왜 나를 찾지 못했는지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이해는 한다.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모든 굴곡과 회한을 떨쳐버렸다.

고국은 절체절명의 순간 러브콜을 보냈다. 평창의 꿈을 전달하는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판단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한 달 반전 제의를 받았는데 기뻤고 흥분됐다고 한다. 출사표는 더욱 믿음이 갔다.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순간 최고의 퍼포먼스가 나온다. IOC 위원들 앞에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기대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만나면 평창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평창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전세계 선수들이 동계올림픽 꿈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올림픽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도슨은 고국을 위해서라면 어디라도 달려갈 자세다.
더반(남아공)=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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