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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맨발의 사나이' 조승환의 투혼

최재성 기자

기사입력 2018-05-25 10:33

<조영섭의 복싱 히스토리> 10. '맨발의 사나이' 조승환의 투혼

얼마 전 필자는 두 손님의 방문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민속씨름 천하장사 출신의 이준희 선배와 요즘 한창 '맨발의 사나이'란 애칭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후배 조승환이었습니다. 적잖게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고, 모처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프로복싱 공식경기를 준비중인 '맨발의 사나이' 조승환.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선배는 한영고 출신으로 전 프로복싱 WBC 플라이급 박찬희 챔프와 고교 동기동창이었기에 반가움은 배가되었죠. 고교 시절 박찬희는 아시안게임 금메달(74년 테헤란), 킹스컵 최우수복서(76년 태국) 출신이어서 동료였지만 당시 자신에 비해 지명도가 높은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이준희 선배는 회고하더군요. 더불어 이준희 선배는 프로복싱 동양미들급 챔피언 김복렬과 국제심판 박동안, 84년 LA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유인탁 등 필자의 지인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그의 폭넓은 인맥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죠. 이준희 선배와 조승환은 30년 지기로 여형약제하는 관계입니다. 제가 조승환에게 관심을 지닌 것은 그가 한때 전도유망한 복서였고, 지금도 복싱을 통해 얻은 교훈을 값지게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승환(왼쪽)과 천하장사 이준희.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조승환은 순천 금당고 출신입니다. 이 학교는 문성길에게 3연패를 당한 허영모와 3연승을 한 김창렬, 그리고 89년 세계군인선수권 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인 성광배, 87년 재팬컵 라이트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 박성춘 등을 배출한 복싱 명문이죠.

필자가 조승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수년 전 사석에서 서울복싱연맹 박성춘 회장, 정일봉 부회장 등 두 사람에게 소개를 받으면서였죠. 조승환은 박 회장의 금당고 1년 선배여서 더욱더 의미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현역 시절 조승환은 '하드웨어'는 출중했지만, 복싱에 집중하지 못해 별다른 성적은 없는 만년 유망주였다 하네요.


◇정일봉 서울복싱연맹 부회장, 조승환, 이경연 관장, 박성춘 서울복싱연맹회장(왼쪽부터).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조승환은 졸업 후 상경,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합니다. 당시 풍요롭고 넉넉한 가정형편 덕분에 사업 자금을 충분히 조달받아 사업가로서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로운 항해를 하던 조승환은 주식이라는 암초를 만나 한방에 침몰하고 맙니다. 거액을 날린 것은 물론이고 상당액의 빚을 지면서 설상가상 대상포진과 폐기흉, 달팽이관 파열 등으로 병고를 치르면서 몸과 마음이 허물어져 자포자기 상태에 빠집니다. 그때가 2008년. 마흔을 갓 넘은 나이에 불어닥친 커다란 한파였죠. 삶과의 이별을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황폐해 가던 어느 날 삶을 놓기 위해 올랐던 도봉산 정상에서 큰 깨달음을 얻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자살'을 뒤집어 읽으면 '살자'로 바뀌듯이 그 짧은 순간 작은 희망의 불꽃이 가슴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몸을 단련하는 데 매진했죠. 그리고 매일 산을 오르면서 심신이 단련되자 자신감이 회복되면서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희열을 느꼈다고 회고했습니다.

마음을 추스른 그는 무엇인가를 해야 했고, 다시 일어설 돌파구를 찾아야 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얼음 위에 서 있기'였습니다. 2015년 11월 '얼음 위에 오래 서 있기'에 도전했고 1시간 32분을 버티면서 최장 시간 기록을 인정받았죠. 비공인 3시간의 기록도 가지고 있는 그는 '맨발의 사나이'로 불리는 시금석을 만들어 놨죠. 현재 그는 한 중견 회사의 전무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전 근무가 끝나면 각종 트레이닝에 몰입하면서 체력 증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죠. 물론 복싱도 스케줄에 포함되어 있답니다. 그는 그동안 많은 빚을 청산함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홀로서기에 성공했습니다. 그가 필자에게 말하더군요.?"선배님, 저는 복싱을 수련하면서 자제하며 견디는 참을성과 쉽게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 끈기 있게 버티는 지속성을 배웠습니다. 제가 삶의 전환점에서 돌파구를 찾은 것은 제 몸속에 복서로서의 투혼이 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맨발로 눈덮인 후지산을 오르고 있는 조승환.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그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만년 설산인 일본의 상징 후지산(3776m)을 무려 8시간에 걸쳐 맨발로 등정하였고, 지난 4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염원하는 이벤트로 광양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427km에 달하는 거리를 9박 10일의 여정에 걸쳐 완주했죠. 당시 종아리에 파스를 붙인 채 절뚝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맨발로 완주한 50대 중년의 당당한 모습에서 장엄함을 느꼈죠. 한겨울 강추위 속에 태백산 6회, 한라산 3회, 지리산 1회를 맨발로 등정한 것은 차라리 그에게는 소풍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의 도전은 끝이 없습니다. 요즘 그는 식단을 조절하며 큰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올 연말에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에 도전합니다. 물론 맨발로 말이죠. '풍요의 여신'이란 뜻을 지닌 안나푸르나는 산악인 엄홍길이 '4전 5기의 신화'를 이룩하며 정상 정복에 성공한 난산이죠. 그가 4차례나 실패한 후 5번째 등정에 성공했을 때 대성통곡하며 기쁨을 자축한 산으로도 유명하죠. 이 안나푸르나를 맨발로 등정한다면 과거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떼를 이끌고 험준한 알프스를 넘은 것처럼 우리에겐 의미 있는 등정으로 기억될 듯하네요. 안나푸르나에서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맨발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네요.

60년대에 마라톤으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전설적인 마라토너 '맨발의 아베베'(에티오피아)가 있었죠. 새천년엔 '맨발의 사나이' 조승환이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그의 도전은 끝이 없습니다. 이 때문인지 그는 KBS '아침마당', SBS '세상에 이런 일이', KBS '9시 뉴스' 등 각종 언론에 무려 50회에 걸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조승환은 26일 자신의 고향 광양에서 열리는 '소년소녀 결손아동돕기' 행사를 위해 얼음 위에 2시간 서 있는 맨발 퍼포먼스를 진행하는데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오는 8월 15일에 '제73주년 광복절' 기념 이벤트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완주하는 맨발 퍼포먼스를 펼친다고 하네요. 한라산, 지리산 능선을 넘고 판문점을 통과한 후 개성을 지나 백두산 정상에 '한반도기'를 꽂는 이벤트를 준비 중인데 북한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조승환은 틈틈이 IBF 미니플라이급 초대 챔피언 이경연 관장이 운영하는 강남 거북체육관에 나가 복싱 수업도 받고 있습니다. 조승환은 여러 변수가 있긴 하지만 올해 안에 프로복서로서 국제전을 치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조성환을 지도한 이경연 관장은 "조승환의 파괴력만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핵 펀치"라고 평한 뒤 "실전 경험이 부족한 핸디캡을 어떻게 커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출중한 하드웨어에 비해 다소 부족한 소프트웨어를 끌어올려 정식 복서로서도 손색없는 경기 내용을 펼치도록 도움을 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침체한 복싱의 활성화를 위해 기꺼이 살신성인의 심정으로 한 몸 투신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한 맨발의 사나이 조승환은 자신이 복서 출신이란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경연 관장의 지도를 받고 있는 '맨발의 사나이' 조승환(오른쪽). <사진제공=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그와 담소하면서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불행이란 불청객이 가끔 찾아와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행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마스터 클래스'이기 때문이죠. 불행이 찾아올 때 잘 접대하여(?) 보내면 조승환처럼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올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육체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고 '꿈'은 길을 찾는 이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사실과 함께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를 악물고 덤비는 사람에겐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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