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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Live]'첫 동반 훈련' 남북 페어, 함께 웃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2-05 16:54 | 최종수정 2018-02-05 21:08


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 실내 트레이닝링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하는 각국 선수들이 훈련에 임했다. 페어부문에 출전하는 북한 렴대옥, 김주식 조와 한국 감강찬, 김규은 조(오른쪽)가 함께 훈련에 임하고 있다.
강릉=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02.05

10여분이 흘렀다. 서로의 연기에만 집중하던 남과 북의 페어 대표가 링크 중앙에서 눈이 마주쳤다. 그제서야 서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피겨 페어 남북 대표가 만났다. 남한의 김규은-감강찬과 북한의 렴대옥-김주식이 5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공식훈련을 함께했다. 남북 피겨 선수가 한국무대에 선 최초의 순간이었다.

당초 기대보다 하루 늦은 만남이었다. 렴대옥-김주식은 1일 강원 양양국제공항을 통해 북한 선수단 본진의 일원으로 입국했다. 렴대옥-김주식은 2, 3일 이틀 간 훈련을 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4일 김규은-감강찬이 강릉 선수촌에 입성하며 남-북 페어 '절친'이 재회할 것으로 보였다. 김규은-김강찬과 렴대옥-김주식은 지난해 여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전지훈련을 함께하며 우정의 씨앗을 싹틔웠다. 김규은-감강찬과 렴대옥-김주식은 브루노 마르코트 코치 밑에서 함께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김규은-감강찬은 김밥을, 렴대옥-김주식은 김현선 북한 코치가 담근 배추김치를 나누며 우정을 키웠다.

잠시 시련도 있었다. 남북 단일팀 논의가 생기면서 일부에서 렴대옥-김주식 조를 한국이 출전하는 팀 이벤트의 일원으로 넣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자칫 김규은-감강찬은 올림픽에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결국 남북 단일팀 논의는 여자 아이스하키로만 한정되면서 김규은-감강찬은 비록 자력으로 올림픽 티켓을 따지는 못했지만 개최국 쿼터로 '평창행'에 성공했다.

최고의 무대 평창 올림픽에서 이들의 이른 재회는 간발의 차이로 어긋났다. 김규은 감강찬이 강릉 선수촌에 도착하자, 렴대옥-김주식은 공식 훈련을 위해 강릉 아이스아레나행 버스에 탑승해 있었다. 김규은 감강찬은 그 소식을 듣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규은 감강찬은 렴대옥에게 전할 생일 선물까지 준비해 왔다. 렴대옥의 생일은 지난 2일이었다.


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 실내 트레이닝링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하는 각국 선수들이 훈련에 임했다. 페어부문에 출전하는 북한의 렴대옥, 김주식이 함께 훈련하고 있다.
강릉=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02.05

5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 실내 트레이닝링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하는 각국 선수들이 훈련에 임했다. 페어부문에 출전하는 북한 렴대옥, 김주식 조와 한국 감강찬, 김규은 조(왼쪽)가 함께 훈련에 임하고 있다.
강릉=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02.05
5일에서야 의미있는 만남이 이루어졌다. 100여명의 취재진이 자리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김규은-감강찬과 렴대옥-김주식은 오후 3시에 열린 C조 훈련을 통해 한 링크에 섰다. 사실 두 절친 페어는 이미 선수촌에서 인사를 나눴다. 감강찬은 "식당에서 밥 먹으러 갈 때 봤다. 거기도 팀이 있으니까 인사 정도 밖에 하지 못했다"고 했다. 같은 시간대에 함께 훈련을 한다는 것을 알고 못 전해준 선물을 챙겨왔다. 선물 꾸러미 안에는 핫팩과 화장품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또 다시 불발됐다. 김규은은 "오늘 선물을 주려고 했는데 다른데서 몸을 풀더라. 라커룸도 같이 쓰는데 대옥이가 늦게 내려와서 줄 기회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오후 3시, 공식 훈련이 진행됐다. 김규은-감강찬에 이어 렴대옥-김주식이 링크에 등장했다. 둘은 묵묵히 자신의 훈련에만 집중했다. 10여분이 흐른 뒤, 눈이 마주쳤다. 서로에게 보낸 환한 미소, 이날 둘의 유일한 교류였다. 감강찬은 "그냥 지나가다 눈이 마주쳐서 웃었다"고 했다.

점프와 리프트 등을 점검하던 두 페어는 프로그램에 맞춰 최종 점검에 집중했다. 함께 빙판을 누비는 순간도 여러차례 있었지만, 연기에만 초점을 맞췄다. 렴대옥-김주식은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캐나다 가수 지네트 레노의 노래 '주 쉬 퀸 샹송(Je suis qu'une chanson)'에 맞춰 연기를 펼쳤다. 점프에서 실수가 이어졌다.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곧바로 김현선 북한 코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김규은-감강찬도 다양한 동작을 점검하며 훈련을 마무리했다. 40여분 간의 훈련은 그렇게 끝이 났다.


훈련 후, 렴대옥-김주식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믹스트존을 빠르게 지나쳤다. 렴대옥은 미소를 지은채 입을 다물었고, 김주식만이 "분위기 좋았습니다"라고 한마디만을 남겼다. 반면 김규은-감강찬은 밝은 표정으로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감강찬은 "같이 연습해서 기분 좋았다. 다음주에 같이 멋진 경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 남북 절친들은 오후 8시 한차례 훈련을 더 함께 나눴다. 준비한 선물은 오후에도 전해지지 않았다. 김규은이 깜빡하고 숙소에 두고 온 탓이었다. 하지만 훈련 종료 후 어깨동무까지 하는 등 한층 더 친해진 모습이었다. 남북 절친의 재회와 함께 선의의 대결도 막이 올랐다.


강릉=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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