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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노선영 "4년 노력 물거품, 억울하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8-01-24 14:48



"어제부터 너무 많은 전화를 받았는데...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24일 낮.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엔 핏기가 싹 가셔 있었다.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던 올림픽, 젊음을 채 꽃피우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난 동생의 꿈까지 안고 평창의 빙판을 질주하겠다는 모든 꿈이 날아간 여자 빙속 노선영(30)은 눈물마저 말라 있었다.

노선영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빙속 여자 팀추월 부문에서 김보름 박지우와 함께 출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인 출전 기준을 채우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고, 모든게 '없던 일'이 됐다. 빙상연맹 측은 23일에야 언론을 통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가 규정에 대한 질의를 번복했고, 이에 대해 항의했으나 '규정을 따르는게 맞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빙상연맹이 책임을 ISU에 떠넘기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어렵게 마음을 다잡고 스포츠조선과 단독인터뷰에 나선 노선영에게 전해들은 '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팀추월 메달 가능성 높다' 선수들 몰아간 분위기

노선영은 국내 여자 빙속 1500m 랭킹 1위다. 하지만 평창에서는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팀추월 훈련에 집중한 나머지 2017~2018시즌 월드컵에서 개인 랭킹포인트를 관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노선영은 "대표 선발전에서 1500m, 팀추월 출전권을 얻었다. 하지만 대표 선발전 직후부터 지도자들과 빙상연맹 분위기는 '팀추월, 메스스타트가 메달 가능성이 높으니 이 두 종목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그는 "냉정하게 나 자신을 보면 (평창에서) 1500m보다는 팀추월에서 메달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500m는 개인의 목표지만 팀추월은 나뿐만 아니라 (김)보름이 (박)지우와 함께 메달을 따는 것 아닌가. 그래서 월드컵 시즌 1500m 출전을 하면서도 팀추월에 공을 들였다. 팀 훈련 역시 팀추월 쪽에 맞춰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500m를 완전히 포기한게 아니었기에 개인 종목 출전권이 있어야 (팀추월 출전도 가능) 한다는 점을 알았다면 팀추월 훈련에만 매달리진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선영은 월드컵 2차시기까지 랭킹포인트 수위를 달렸으나 3, 4차시기에서 부진하면서 결국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노선영은 "2차시기를 마칠 때만 해도 '랭킹 포인트로 1500m 출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3차시기를 앞두고 팀추월 훈련에서 오버페이스를 했고 그 결과 3, 4차시기에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팀추월'에 맞춰져 있던 대표팀 분위기가 결국 노선영을 몰아붙인 것이다.

알고도 쉬쉬한 빙상연맹, '입막음'까지 했다

노선영의 평창행 좌절은 23일 강릉에서 열린 빙속 테스트경기 직후에야 알려졌다. 빙상연맹 측은 'ISU 측의 번복결정을 노선영 측에 알렸으나 19일까지 기다려보자는 입장이었고, 19일 (ISU) 발표가 났는데 노선영 선수가 후보 2순위임에도 (평창에) 못 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이 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선영이 대표팀 탈락 소식을 '공식적으로' 전해들은 것은 22일로 알려졌다. 빙상연맹 측이 밝힌 내용과 외부에 알려진 내용 간에 묘한 공백이 생긴다.


노선영이 밝힌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과 동계체전(16~18·태릉국제빙상장) 기간 따로 만났다. 전 부회장이 '평창에 못나갈 수도 있다'며 '19일까지 조정기간인데, 1500m 예비 후보 2번이고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때까지 기다려봐라. 대신 모른 척하고 있으라. 지도자들도 혼란스러울테니 내가 이야기한 것을 말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대표팀 측도 미리 노선영의 탈락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노선영은 "대표팀 감독도 19일 전 '못 나갈 수 있다. 19일에 결정되니 기다려보라. 그때가 되서야 말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아 미리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전 부회장을 통해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 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 있으라니 그럴 수밖에 없어서 훈련만 계속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 빙속 대표팀은 23일 강릉빙상장에서 테스트경기에 나섰다. 전날까지 노선영은 아무런 '통보'도 듣지 못했다. 노선영은 "테스트경기 출전은 다가오는데 아무런 말이 없어 22일 내가 직접 '(평창에) 출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직 결과가 안왔다' '메일이 안왔다' '주말이라 연맹과 연락이 안된다'고 하던 관계자들은 그제서야 이야기를 해줬다. '사실 연락이 왔는데 1500m 바뀐게 없어 못나간다. 결정된 건 없다'라고 하더라.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일단 훈련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테스트경기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직전까지 별 말이 없길래 '나도 뛰어야 하나. 올림픽 못나간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연습을 했으니 일단 뛰라'고 말하더라. 뛰어봤자 평창에 가질 못하는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싫다'고 하니 '그럼 뛰지 말라'고 하더라. 그제서야 동료들도 사실을 알게 됐다. 밤늦게 '내일 서울로 가서 (태릉선수촌에서) 퇴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오늘 아침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이제 태릉에 짐을 빼러 가야 한다."

연맹의 물관리, 청춘의 꿈을 짓밟다

노선영은 인터뷰 내내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순감에 모든 꿈과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그것도 주변의 압박과 잘못으로 빚어진 일이다. '불공정한' 모든 상황에서 달리 떠올릴 단어가 있을까. "이전까지 어떻게 될 줄 몰라 혼자 속앓이를 했다. 그런데 너무 답답하다. 연맹이 규정을 잘못 이해한 것 아닌가. 그 뒤에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항소를 한 적도 없다. 메일 몇 통 보낸게 전부다. 'ISU가 11월엔 된다고 하더니 지금은 안된다고 하는게 말이 되나'라고 물었더니 '미안하지만 규정이 그렇다. 이건 감정에 호소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더라. 이해가 안되고 너무 억울하다. 규정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ISU에 문의만 하고 정해주는대로 결정만 하면서 '구제해줄 방법이 없다. 나가라'는 말만 하고 있다." 복받친 감정은 더 격해졌다. "연맹에서 잘못했는데 ISU 탓으로 돌리는게 너무 화가 난다. 그쪽에서 번복했으니 우린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연맹 잘못이고 방법을 알아본 게 아니지 않나. 안일하게 대처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통보를 받은 뒤에도 그저 '알았다'는 반응이다. '만약 내가 메달 유력 후보였다면 그랬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되든 안되든 어떤 방법이라도 썼어야 하는데 그런 시도조차 없이 내게 일방적으로 통보만 했다. 사과 한 마디도 없이 '선수 잘못도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그냥 나가라는 말만 했다. 너무 억울하다."

노선영은 "나에겐 이제 올림픽은 끝이다. 나이도 서른이라 빙상연맹의 바뀐 규정 탓에 대표팀에 가지도 못한다. '나이든 사람은 그만하라'는 것 아닌가. '물관리'하는 것 같다. 누굴 위한 연맹인지 모르겠다"고 격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떻게 4년을 더하나. 4년을 더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다."

노선영은 2014년 소치 대회 후 은퇴를 고민했다. 3차례 올림픽에 나서 후회없이 도전한 만큼 후배들에게 길을 물려주고자 했다. 그런 그를 다시 빙상장으로 이끈 건 2016년 4월 어깨 골육종으로 투병 끝에 숨진 동생 故 노진규였다. '함께 평창에 서자'는 꿈을 이루는게 노선영의 마지막 꿈이었다.

인터뷰 내내 담담했던 노선영의 목소리엔 끝내 눈물이 맺혔다. "나는 출전 만을 위해 올림픽을 준비한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미 3번이나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내 욕심 만을 위해 준비한 대회가 아니다.... 너무 마음이 복잡해서 더이상 말을 못하겠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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