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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 뒤집어 써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환장할 일인지…. 평온하던 삶이 그날 이후 어떻게 뒤집어질 수 있는지….
그가 책을 썼다. 소설이 아니다. 일본 '북관동 연쇄 아동납치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을 다룬 논픽션,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내친구의서재)가 국내에 출간됐다. 일본에서 신초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무려 30만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로 큰 화제를 모은 작품.
일본 관동 지역의 인접한 두 도시에서 12년(1979~1990) 동안 어린 소녀 네 명이 납치 살해되는 강력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 끝에 1991년 12월, 유치원 버스 운전기사 스가야 도시카즈가 체포된다. 스가야의 자백과 당시 도입된 DNA 감정 결과가 증거로 인정돼 2000년 7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다. 하지만 스가야 체포 이후인 1996년에도 동일 지역에서 유사사건이 발생해 또 다른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시미즈 기요시 기자를 빼곤 아무도 이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다. 저자는 스가야가 누명을 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취재를 시작한다. 그는 사건 현장을 100번 넘게 오가며 검증에 검증을 거듭한 끝에 경찰 수사 내용의 모순점을 하나씩 밝혀낸다. 그리고 유족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1년 넘게 취재한 저자는 스가야가 무죄라고 확신하고,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DNA 재검증을 요구해 기어이 성사시킨다. 진실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를 통해 DNA 재검증에 극구 반대하던 사법부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신의 취재 원칙에 따라 취재를 시작한 시미즈 기자는 결국 한 사람을 구하고, 피해자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고, 나아가 일본 사회 전체를 바꾸었다.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쫀득한 논픽션. 실제 벌어졌던 사건을 저자가 직접 추적해 들어가는 만큼 마치 눈 앞에서 현장을 보고 있는 듯 궁금함에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책장을 덮는 순간 인간이 만든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불완전할 수 있는지, 이중 삼중의 견제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진정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가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 또 하나, 1980년대 말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 앞에 '미제'란 수식어가 붙게 된 너무 늦어버린 회한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 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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