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공동기획2] 전통스포츠보급의 현장, 청소년 합기도호신교실을 가다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5-08-18 07:19


"자, 다같이 인사부터 하고 시작하자. 차렷, 인사!" "합! 기!"

우렁찬 기합소리가 체육관 안을 가득 메웠다. 정현수 관장(37)의 시범을 바라보는 수 십개의 눈망울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최소한의 힘과 효율적인 동작만으로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수련. 한국 전통 무예스포츠로 이미 오랜 역사와 체계를 갖춘 '합기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예산지역 남녀 중고등학생들은 정 관장의 동작과 설명에 푹 빠져들었다. 지난 15일 충남 예산 호키체육관의 풍경.

국민생활체육회(회장 강영중)가 2008년 '전통 종목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전통스포츠 보급사업의 현장이다. 정부는 생활체육 종목 중에서 전통 종목의 명맥을 유지하고, 동호인 및 일반 국민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지난 8년간 궁도와 택견, 줄다리기, 태권도, 검도, 합기도, 국무도, 족구, 국학기공 등 총 9개 종목을 대상으로 보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마상무예도 포함됐다. 예산 호키체육관에서 진행된 '합기도 호신교실'은 그 사업의 일환이다.
◇8월15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 호키종합체육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015 전통스포츠보급 합기도호신교실'이 진행됐다. 이는 국민생활체육회의 '전통 종목 활성화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로 국민생활체육 전국합기도연합회가 진행하고 있다.. 예산지역 남녀 청소년들이 강습회에 앞서 예절 교육을 받고 있다. 예산=이원만 기자wman@sportschosun.com
'호신'의 합기도, 학교폭력 예방의 대안이 되다

'국민생활체육 전국합기도연합회(회장 정달순)'는 올해 보급사업의 대상을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맞췄다. 정부가 '4대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집중관리하고 있는 심각한 '학교 폭력'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합기도는 매우 유용한 스포츠다. 남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어'에 초점이 맞춰진 전통 스포츠이기 때문. 근본 이념인 '호신'을 배우는 과정에서 신체와 정신을 바르게 가꾸는 올바른 호흡법과 타인에 대한 예의도 함께 익힐 수 있다.

전국합기도연합회도 이런 면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전통스포츠 알리기'에 집중한 것이다. 이를 위해 7월 초부터 전국 20개 지역 합기도 체육관에서 주말 이틀씩 총 8주 과정으로 지역 중고등학교 청소년에게 무료로 합기도 강습회를 열고 있다. '2015 전통스포츠보급 합기도호신교실'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월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에서 진행된 2015 국민생활체육 전국합기도연합회의 제1차 심판&경기 지도자 연수교육에 참가한 합기도 지도자들이 경기 판정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전국합기도연합회 제공
합기도연합회 최용운 사무처장은 "예전에는 지역 학교체육관을 빌려 강습회를 열기도 했는데, 합기도 전용체육관이 아니다보니 여러 시설 면에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자칫 아이들이 다칠까 우려됐죠. 적지않은 대관료도 부담스러웠고요"라며 "결국 올해부터는 전국에서 엄선한 합기도 전문 체육관에서 강습회를 열고 있습니다. 지도자분들도 모두 생활체육 합기도연합회에서 정식으로 심판 및 경기지도자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획득한 분들로 구성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강습회 당 참여 학생들의 규모는 20명선. 학교에서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나 친구들끼리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든 강습은 무료로 진행된다. 국민생활체육회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수익 사업은 아니다. 10여 만원 정도의 훈련 지원금은 대부분 수강생들의 간식과 점심 식사비용으로 사용된다. 오히려 지도자들이 스스로의 지갑을 여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일선 지도자들은 지역에 기여하는 봉사활동의 개념으로 보람차게 여기고 있었다.

예의와 호신의 정신을 배우는 아이들


실제로 이날 호키체육관에는 오전 10시부터 지역청소년들이 몰려들었다. 중학교 2학년생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여학생들도 10여 명이나 됐다. 정현수 관장이 기본적인 자세와 호흡법, 그리고 예의에 관해 강조한 뒤 다양한 형태의 낙법을 가르쳤다. 낙법은 신체 밸런스가 무너진 채 쓰러지는 순간 몸이 받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호신 동작. 한번 배워두면 평생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15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 호키종합체육관에서 진행된 '2015 전통스포츠보급 합기도호신교실'에서 정현수 관장(오른쪽)이 참가 학생들에게 측방 낙법을 가르치며 시연 동작을 하고 있다. 예산=이원만 기자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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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터운 매트가 깔린 체육관에 3열로 늘어선 20명의 예산 지역 중고등학생들은 맨 앞에 선 정 관장의 설명과 시연 동작을 차례로 따라했다. 우렁찬 기합소리를 내질렀지만, 동작은 어설펐다. 처음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정 관장이 일일히 아이들 옆에 다가가 올바른 자세로 고쳐주면서 낙법의 요체에 관해 설명했다.

이날 약 2시간 동안 이뤄진 강습회에서는 손이나 발로 상대를 치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호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청소년들이 다양한 형태의 외부 위협 동작을 회피하거나 막아내고, 필요한 경우에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집중 강습됐다.

합기도는 대단히 과학적인 스포츠다. 신체 밸런스와 관절의 가동 범위에 따른 힘의 이동 및 분배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 경지를 깨달으면 가벼운 손짓 만으로 거구의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전문적인 경지의 이야기. 지금 이 아이들에게는 원치 않는 폭력 앞에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절실하다. 이날 강습의 초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강습회 내내 아이들의 힘찬 기합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예산 출신인 정 관장은 마치 동네 큰 형님처럼 자상하고 유쾌하게 아이들을 이끌었다.


◇15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 호키체육관에서 진행된 '2015 전통스포츠보급 합기도 호신술교실'에 참가한 지역 청소년들이 수료장을 든 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예산=이원만 기자wman@sportschosun.com
정 관장은 "처음 강습회 때는 다들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서먹한 분위기였죠. 그래서 '바르게 인사하기'부터 가르쳤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예의가 없다고 하는데, 그건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죠. 기술도 중요하지만, 서로 어울리고 밝게 지내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강습회에 참여한 예화여고 2학년생 장유빈(17)양은 "친구들을 통해 이런 강습회가 있다는 걸 듣고 찾아왔어요. 별 기대는 없었는데,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여러가지 호신법도 알게된 시간이었어요"라며 "강습회가 끝나도 계속 합기도를 배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른 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확한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아이들은 한층 밝고 건강하게 커나가고 있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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