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아몰랑,도핑' 몰랐다고 용서되지 않는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5-06-29 06:50


한화 이글스와 NC 다이노스의 2015 프로야구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가 21일 마산구장에서 열린다. 경기 전 한화 최진행이 타격 훈련을 하고 있다. 창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6.21/

현대건설과 흥국생명의 2014-2015 여자프로배구 경기가 23일 성남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흥국생명 김수지와 곽유화가 블로킹을 성공한 후 기뻐하고 있다.
성남=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10.23/

#. '수영스타' 박태환(25)은 지난 3월 국제수영연맹(FINA) 청문회에서 선수 자격정지 18개월 징계를 받았다. 인천아시안게임 개막 직전인 지난해 9월 3일 실시한 도핑검사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이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됐다. T의원에서 맞은 '네비도' 주사제가 문제가 됐다. "뭔가 잘못된 거라 생각했고, 일부러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받고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생각했다"고 했다.

#.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강수일(28)은 '15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강수일은 지난달 5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실시한 도핑테스트 A샘플 분석 결과, 상시금지약물인 메틸테스토스테론이 검출됐다. 아랍에미리트(UAE) 평가전, 미얀마와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1차전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강수일은 "콧수염이 나지 않아 선물받은 발모제를 안면부위에 발랐다"고 해명했다. "힘들게 간 위치에서 실수로 이런 상황이 돼 너무 슬프다. 프로 선수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부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고 했다.

#.흥국생명 '미녀스타' 곽유화(22)는 지난 23일 '6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014~2015시즌 중간 도핑검사 결과 금지약물인 펜디메트라진 및 펜메트라진이 검출됐다. 소명 청문회에서 "어머니가 주신 한약을 먹고 그런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이어트약이 원인이었다.

#.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최진행(30)은 '30경기 출장정지' 제재를 받았다.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5월 진행한 도핑테스트 결과 최진행의 소변 샘플에서 세계반도핑기구(WADA) 금지약물에 해당하는 스타노졸롤이 검출됐다. 스타노졸롤은 남성 호르몬 수치를 늘려 근육을 강화하는 스테로이드 계열 성분이다. 최진행은 반도핑위원회에 참석해 "체력이 떨어져서 지난 4월 지인의 권유로 영양보충제를 섭취했으며 금지약물 성분이 들어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올해 초 '수영스타' 박태환 사건을 시작으로 프로축구부터 프로배구, 프로야구까지 충격적인 '도핑' 파문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프로구단에서 잇단 적발, 징계 사례까지 아마추어와 프로를 넘나들며, 도핑의 충격파가 이어지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핑에 연루된 선수들의 공통된 반응은 "몰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몰랐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도핑에 대한 '무지'와 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도핑 사건에서 소위 '아몰랑(아, 몰라에 o받침을 붙인 말, 논리없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뜻하는 온라인 유행어)'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반도핑 룰은 강경하다. 도핑방지규정 2조1항1호는 '금지약물이 자신의 체내에 유입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선수 각 개인의 의무'라고 명시하고 있다. 고의성, 인지 유무와 무관하게 자신의 몸에 들어가는 모든 약물, 모든 성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수영스타 박태환의 반도핑청문회에서 '고의성 없음'을 주장하는 박태환측에 청문위원들이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왜 너같은 선수가 그런 성분이 몸안에 들어오는 것을 방치했느냐'는 것이었다.

휴대폰만 있으면 모든 정보가 내손 안에 들어오는 세상이다. '아몰랑'은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 금지약물을 구하기도 쉽지만, 금지약물을 스스로 차단하기도 좋은 세상이다. KADA 사이트(http://www.kada-ad.or.kr/)에 접속, 약물 성분과 약제 이름을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금지약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약물을 복용하기 전, 스스로 금지약물 검색하는 일을 습관 삼아야 한다. 한약 혹은 보약, 체력 보충제, 건강보조식품의 경우에는 팀닥터나 트레이너를 통해 KADA 등 전문기관에 해당 약품을 보내 성분을 미리 확인한 후 복용하면 된다.


더 이상 "몰랐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없도록, "몰랐다"는 변명이 발붙일 수 없도록 법적,제도적인 장치와 강력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태릉선수촌에 입촌, 한달에 1~2회씩 도핑 교육을 받는 국가대표 선수들에 비해 각협회, 각 구단의 프로구단 선수들에 대한 도핑교육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도핑의 사각지대'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무엇보다 선수들 스스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단 한번의 잘못된 선택, 탐욕, 실수와 무지가 선수로서 쌓아온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핑에 대해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강수일의 경우 수염을 나게 하는 연고가 도핑과 관련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도핑테스트 전날까지도 해당 연고를 발랐다. 그토록 간절했던 태극마크의 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스스로를 "바보같다"고 자책했다. 프로축구 선수 강수일이 바른 약은 '미크로겐'이라는 발모 연고다. 일본산 발모제로 수염과 눈썹, 구렛나루 등을 기르는데 특효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젊은 남성들 사이에 인기 높다. 남성호르몬인 메틸테스토스테론, 프로피온산테스토스테론이 주성분이다. 미크로겐에 함유된 남성호르몬의 유해성이 문제가 되면서 식약청에서 2008년 판매를 일시 허가했다가 취소했다. 그러나 선수들은 물론 일반인들조차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남대문 수입상가,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맘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약이다. '미크로겐'을 KADA사이트, 금지약물 검색창에 입력하면 곧바로 '국내 미유통 약물이며, 금지약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K리그 현장의 한 관계자는 "아마 이런 유의 연고를 바르는 이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강수일 소식을 듣고 뜨끔한 선수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강수일이 수십명을 구했다는 우스개도 떠돈다"고 했다.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기엔 현장의 무지와 안이함은 심각한 수준이다.


화면캡처=KADA 홈페이지
지난 4월30일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프로선수 도핑의무화 법(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재까지는 프로구단이 KADA에 시료 채취 및 검사를 의뢰할 경우에 한해, 도핑검사가 이뤄졌지만 오는 11월, 법안이 시행되면 KADA가 직접 프로 선수들의 도핑 검사를 주관하게 된다. KADA가 불시에 프로선수들에 대한 도핑테스트를 실시하게 되면, 보다 능동적, 적극적으로 프로선수들의 도핑에 개입하고 관리하게 된다. 이 의원은 "프로선수들이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나서면서 현장에서 프로선수들의 도핑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돼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제도적으로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 설령 안걸린다 하더라도, 선수생활 이후까지 약물은 건강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프로선수들의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절실하다. 도핑에 대해 불편하거나 귀찮다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경기에 나가서 이기고,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도핑에 대해 경각심과 지식, 두려움을 가지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스포츠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조치일 뿐 아니라 선수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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