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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을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세계탁구선수권 개인전, 단체전은 격년제로 열린다. 짝수 해에는 단체전, 홀수 해에는 개인전으로 펼쳐진다. 국제탁구연맹(ITTF)은 이번 개인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깜짝 흥행카드를 발표했다. '세계 최강' 중국의 메달 독식을 막고, 탁구의 재미와 인기를 끌어올리는 흥행요소로 남녀 복식과 혼합복식 운영 방식에 적극적인 변화를 꾀했다. 각국 남녀 엔트리 5명 가운데 2개조가 출전하는 복식 종목에서 1명의 선수는 중국 톱랭커와 손발을 맞출 수 있도록 했다. 세계 최고의 복식 에이스, '왼손의 달인' 쉬신과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희망' 양하은이 한중 혼합복식조로 낙점됐다. 승승장구했다. 경기 직후 양하은은 "파트너를 너무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세트 범실이 많았다. 9-11로 내줬다. 4세트 양하은은 공세로 바뀌었다. 적극적인 포어핸드드라이브로 초반 기선을 제압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양하은은 "준결승이라 그런지 많이 긴장했다. 실수를 안하려는 마음이 컸다. 3세트를 진 후 이렇게 해서는 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세트 초반 드라이브가 먹혀들면서 긴장이 풀렸다"고 설명했다.
3세트 직후 벤치의 중국 류궈량 감독, 한국 안재형 코치 역시 한목소리로 "자신있게 치라"며 양하은을 독려했다. 류궈량 감독은 "상대 공이 튀어오니 쉬신이 공격할 수 있도록 잘 잡아주라"고 조언했다. 4세트 이후 양하은과 쉬신의 박자가 맞아들며, 위기를 넘겼다. 4대1로 승리하며, 결승에 올랐다. 1989년 도르트문트 대회 유남규-현정화이후 19년만에 이 종목 금메달을 노려보게 됐다.
1년만의 세계선수권에서 양하은은 웃었다. 쉬신과 호흡을 맞춘 혼합복식에서 결승에 안착했고, 여자단식에선 나홀로 16강에 올랐다. 양하은은 "혼합복식 결승에 오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큰 기대를 안했지만 준비는 잘됐던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을 잘 잡았다. 심리적으로 덜 불안해지다보니 탁구도 괜찮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세계 최고의 에이스 쉬신과의 호흡은 양하은에게도 좋은 공부가 됐다. "가까이서 연습하고 같이 플레이하면서 정말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움직임, 스윙, 모든 면에서 대단한 선수다. 같이 볼을 치고, 회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됐다"고 덧붙였다. "매일 경기 1시간전부터 쉬신과 연습을 했다. 쉬신은 내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점이 내겐 편하게 느껴졌다. 부담이 생기면 힘이 들어갈 수 있는데 쉬신은 '네가 할 몫만 하면 된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고 했다. 안재형 코치 역시 같은 주문을 했다. "너는 류쉬엔이나 리샤오샤가 아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너답게 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무리하지 않고, 절제된 탁구, 내 몫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탁구에 대한 믿음도 생겼다. "내 탁구가 완성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마음 흔들리지 않고 심리적인 면에서는 조금 나아졌다"며 웃었다.
요시무라 마하루, 이시카와 카스미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32강에서 박영숙-이상수조, 8강에서 북한의 박신혁-김혜성,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북한 김혁봉-김 정조까지 물리치고 올라온 일본 최강 복식조다. 일본 에이스 카스미와의 인연은 깊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단식 8강에서 양하은은 카스미를 꺾고 극적인 동메달을 따냈었다. 결승전을 앞두고 양하은은 "남자선수의 서비스가 상당히 까다롭더라. 연결이 빠르고 좋은 팀이다. 긴장하지 않고 내몫을 다하겠다. 재미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