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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체대의 요즘 분위기? 소위 '멘붕(멘탈붕괴)'이다."
14일 한 체육계 인사는 한국체육대학교 총장 임용 후보자 선거에서 최다득표로 당선된 조현재 전 문화체육부 제1차관에 대한 교육부의 임명 제청 거부 후 학내 분위기를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한국 엘리트스포츠의 요람' 한체대는 지난해 3월12일 김종욱 전 총장 임기만료 이후 무려 19개월째 수장 없는 '대행 체제'의 파행을 이어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상 유례없는 국립대 최장기 총장 공석 사태다. 김종욱 전 총장 재임기인 2012년 11월 첫 총장 공모에서 선출된 교수가 비리 의혹을 받으며 교육부 인준을 받지 못했다. 2013년 7월, 1순위로 선출된 두 번째 총장후보자 역시 사퇴했다. 한체대는 올해 2월 초에 세 번째 후보를 선정했지만 교육부가 총장 임용후보자 '재추천'을 요구했다.
삼수끝 4번째 도전, 한체대는 사활을 걸었다. 한체대 총장 초빙위원회는 휘문고-연세대 행정학과-서울대 대학원 행정학과 출신의 조현재 전 문체부 차관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내세웠다. 조 전 차관은 행정고시 26회 출신으로, 31년4개월간 문체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무엇보다 '체조선수' 출신으로 문체부 체육국장, 기조실장 등을 두루 거치며 스포츠 현장과 정책에 해박한 체육 전문가라는 점에서 환영받았다. 7월 중순 문체부에 사표를 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조 전 차관은 총 투표수 47표 가운데 기권 1표를 제외하고 29표,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대다수 한체대 교수들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위기의 한체대를 구할, 실력과 덕망을 갖춘 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교육부의 임명 제청, 대통령의 재가 절차만을 남겨논 상황, 마지막 한계단을 넘지 못했다. 지난달 말, 교육부는 조 당선자의 임명 제청을 거부했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문체부 출신 고위공무원이 국립대 수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과 관련, 관가에서는 소위 '관피아'에 대한 여론의 부담, 문체부 장관의 부재속에 한체대 총장 공모에 응모한 것에 대한 '괘씸죄' 등 이런저런 설들이 흘러나왔다.
'관피아'의 덫, 총장 공모제의 함정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공공기관 인사 때마다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뜨겁다. 정부 부처 장-차관, 국장 등 고위직 출신이 퇴직 혹은 사표를 낸 후 산하기관에 재취업해, 전관예우 혹은 기득권을 이용해 군림하고, 인맥을 활용해 이권을 부당하게 취해온 '관피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한때 경륜과 실력을 겸비한 인사로 각 기관에서 우대받았던 관료 출신들은 하루아침에 모두 '관피아'라는 이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30년 이상의 풍부한 경륜, 전문성과 훌륭한 인성을 갖춘 '좋은' 퇴직 관료들마저 흑백논리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현장의 목소리나 해당 인사에 대한 개인적 평판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한체대 총장 선거에 참가한 한 교수는 "조 전 차관이 거부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교수들에게도 대단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고 털어놨다.
교육부의 '인사 브레이크'에 국립대 내부의 혼란과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공무원 조직'과 유사한 한체대 교수들은 '총장 이야기'를 꺼내면 입을 꾹 다문다. '침묵의 나선'이 형성됐다.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열패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다. 임명 제청이 거부된 인사들 역시 '상처투성이'가 됐다. 이유도 모른 채 '벙어리 냉가슴'이다. 임명 제청권을 가진 교육부가 사실상의 '인사권'을 휘두르게 되면서 '간선제, 공모제 무용론'도 일고 있다. 각 국립대는 지난해부터 정부방침에 따라 총장 간선제를 도입했다. 파벌 조성, 금품 선거등 부작용을 이유로 총장 직선제 폐지를 방침으로 내놨다. 하지만 이후 총장 선출을 놓고 각 국립대는 몸살을 앓고 있다. 대학 자율권 훼손, 의사결정권 무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교수들의 다수결로 선택된 인사를 거부하고 결국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내정해 '낙점'하겠다는 뜻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한체대 '백년지대계'의 표류, 언제까지
한체대는 다음달이면 수장없이 20개월째를 맞는다. 총장 초빙위원회에서 새로운 후보를 선임하고, 투표 절차를 이행하려면 또다시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4번의 실패는 '트라우마'가 됐다. 도대체 어떤 후보를 내세워야 교육부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회의론도 팽배하다. 총장 후보자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시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계를 이끌어갈 명망 있는 후보들은 오히려 몸을 사린다. 내년 졸업식도, 입학식도 총장 없이 치를 가능성이 높다. 2년 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4년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학부에서 비전을 세우고, 책임있게 밀고 나갈 리더가 없다. 2012년 김종욱 전 총장 재임 시절 야심차게 추진했던 '한체대 평창 캠퍼스'안도 공중으로 사라졌다. 알펜시아 동계스포츠 시설지구에 캠퍼스를 마련해 2013년부터 4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고, 동계스포츠 종목 선수, 지도자, 운영 인력을 육성하겠다던 계획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백년지대계'가 표류하고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