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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정지현, '체중과의 전쟁' 이겨낸 '아빠의 힘'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4-09-30 19:53


한국레슬링대표팀 정지현이 30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남자유도 그레코로만형 71kg급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투르디에프를 폴승으로 이기고 포효하고 있다.
인천=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09.30/

30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두 아이와 함께 남편의 4강전 경기를 지켜보던 정지연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4강전에서 광저우아시안게임 챔피언이던 '난적' 압드발리 사에이드(이란)와 경기를 하던 남편의 목에는 긁힌 상처가, 눈두덩이에는 검은 멍이 든 것을 보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경기를 보던 정지연씨는 "져도 좋으니 몸만 안 다쳤으면 좋겠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내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사에이드를 꺾고 결승에 진출, 끝내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한국 자유형 그레코로만형의 '맏형' 정지현(31·울산남구청)이 아시안게임 세 번째 도전만에 정상에 섰다. 정지현은 30일 열린 그레코로만형 71㎏급 결승에서 투르다이에프 딜쇼드존(우즈베키스탄)을 경기시작 1분 20초만에 9대0으로 꺾고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마지막 아시안게임 무대를 화려하게 마쳤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로 '깜짝 스타'로 등극한 정지현이 딱 10년 만에 따낸 종합 대회 금메달이다. 지난 10년, 그는 아시안게임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긴 세월동안 수 많은 좌절과 변화의 고통과 싸워왔다.

가장 큰 도전은 체급이었다. 아테네올림픽 60㎏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정지현은 이후 66㎏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그러나 베이징올림픽과 런던올림픽에서 중도 탈락하는 등 66㎏급에서 국제대회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과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2년 팀의 막내로 출전한 부산대회에서는 입상에 실패했고, 2010년 광저우대회에서는 은메달에 그쳤다. 30세가 넘어 정지현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2013년 12월 체급 조정을 결정하면서 그레코로만형 71㎏과 80㎏급을 신설했다. 정지현은 71㎏을 새로운 무대로 택했다. 라이벌들을 피하고 금메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모험이었다.

도전에는 큰 희생이 따랐다. 정지현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체중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71㎏급에 출전하려면 평소 74~75㎏을 유지한 뒤 대회 이틀전부터 4㎏감량에 나서야 경기 당일 힘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지현의 평소 몸무게는 69~70㎏였다. 살을 빼는데 익숙했던 운동 선수들에게 4~5㎏ 체중 증량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워낙 체구가 작고 지방량이 적은 그에게 살찌우기는 특히 힘들었다. 대회를 한달여 앞두고 중량에 돌입한 정지현은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야식으로 피자, 치킨, 족발은 기본이었다. 식사를 한 이후에도 고칼로리 음료수를 마셨다. 뱀과 전복, 낙지, 산삼 등 몸에 좋다는 음식도 모두 챙겨 먹었다. 과식을 하면 소화가 안돼 약을 먹기 일쑤였고 하루 세차례 강훈련을 소화하면 늘었던 체중이 다시 원상복구가 됐다.

얼마나 힘든 도전이었는지는 아내 정지연씨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체중을 늘리려고 많이 먹는데 소화를 시키지 못해 많이 고생했다. 나중에는 탈이나 밥을 먹지도 못하는데도 죽을 꾸역꾸역 먹는 것을 보며 안타까웠다"고 했다. 21세에 연애를 시작해 두 아이를 두기까지 10년 이상 함께 했지만 정지연씨는 최근에서야 남편에게서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처음 들어봤다. 그만큼 체중 증량의 고통과 30세가 넘어서 소화해야 하는 지옥 훈련의 강도가 심했다는 얘기다. 그는 "아테네올림픽 이후 큰 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해 남편이 성적 때문에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걸 자주 봤다"고 말했다.


정지현과 함께 낚시에 나서 포즈를 취한 딸 서현(맨왼쪽)과 아들 우현. 사진제공=정지현의 아내 정지연씨.

그럼에도 정지현이 모든걸 참아내고 아시안게임 정상을 노린 이유는 단 한가지, 두 아이 때문이다. 정지현은 두 아이를 볼때마다 2010년 광저우대회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의 아픔을 지울 수 없었다. 정지현은 광저우대회를 앞두고 첫째 아이의 태명을 '아금(아시안게임 금메달)이'로 지었지만 은메달에 그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는 둘째 아이의 태명을 '올금(올림픽 금메달)이'로 지었는데 또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금메달을 선물하겠다던 '아빠' 정지현은 두 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어느덧 '아금이' 서현(4)이와 '올금이' 우현(3)이는 레슬링을 하는 아빠의 모습을 따라할 정도로 컸다. 이번에는 어떤 타이틀도 걸지 않았다. 오로지 두 아이를 위해 뛰겠다는 다짐 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 서현이와 우현이를 위해서라도,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 아이들과 금메달을 약속했다. "당신은 이미 자랑스러운 아빠야, 메달에 상관없이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라는 아내의 응원도 정지현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두 번의 실패를 맛본 정지현은 세 번째 도전만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4강전에서의 눈물 겨운 사투도 아이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결국 아내와 두 아이가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정지현은 '아빠의 이름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순간만큼 정지현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다. 아시아 챔피언이 아닌 약속을 지켜낸 두 아이의 자랑스러운 아빠가 됐기 때문이다.


인천=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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