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유도인생의 한풀이 금메달이었다.
남자 유도 대표팀의 '맏형' 방귀만(31·남양주시청)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유도 단체전에서 꿈에 그리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도 천재'로 불리며 2002년 대표팀에 발탁된 이후 10여년 동안 이뤄내지 못한 메이저 종합대회 금메달, 그 꿈이 드디어 이뤄졌다. 방귀만도 이렇게 오래 걸릴줄 몰랐다. 초등학생 3학년때 유도를 시작한 방귀만은 대형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용인대학교 재학시절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장학생에 선정됐다. IOC가 올림픽 유망주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 경비 및 지원금을 주는 장학금이었다. 그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대표로 선발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아테네올림픽 1회전에서 탈락하면서 '비운의 천재'라는 별명이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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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징계가 풀린 2012년, 방귀만은 코리아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화려한 복귀신고를 했다. 2년간 인천아시안게임만을 그리며 매트 위를 구르고 또 굴렀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아시안게임을 자신의 굴곡 많은 유도인생의 한풀이 무대로 잡았다. 이원희 황희태(이상 여자 대표팀 코치)와 최민호(남자 대표팀 코치) 등 2004에 함께 올림픽에 나섰던 멤버들이 대표팀의 코치로 그를 도왔다. 두 아이 준서와 수진이에게도 '비운의 천재', '2인자'가 아닌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아빠'로 기억되기 위해 금메달이 꼭 필요했다. 그의 아시안게임 출사표는 간단하고 명료했다 ."아시안게임에 모든걸 걸었다."
첫 무대는 아쉬웠다. 21일 열린 남자 유도 73㎏급 8강전에서 일본의 아키모토 히로유키에게 지도패한 뒤 패자부활전→동메달 결정전을 통해 동메달을 따는데 만족해야 했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마지막 기회가 왔다. 방귀만은 윤태호(인천시체육회) 최광현(하이원·이상 66㎏급), 김재범(한국마사회·81㎏급), 곽동한(용인대) 이규원(한국마사회·이상 90㎏이하급), 김성민(경찰체육단·무제한급) 등 후배들을 이끌고 단체전에 출전했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팀의 맏형으로 이란과의 8강전, 몽골과의 4강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따내며 결승행을 이끌었다. 결승에서는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광현이 첫판에서 패하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두 번째 주자로 나선 방귀만도 경기 종료 1분 30초 전까지 절반을 빼앗기며 끌려갔다. 그러나 온힘을 다한 업어치기 절반으로 점수를 따낸 뒤 상대의 지도를 유도, 우세승을 거뒀다. '맏형' 방귀남의 활약에 후배들이 힘을 냈다. 김재범이 세 번째 판을 따내며 한국이 2-1 역전에 성공했고, 이어 이규원과 김성민이 한판승으로 승리해 4대1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결국 방귀만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이저대회 금빛 메치기에 성공하며 굴곡이 심했던 유도인생의 한을 풀어냈다. 두 아이 앞에 '금메달리스트 아빠'로 당당히 서게 됐다.
남자 단체전 금메달로 '그랜드슬래머' 김재범은 아시안게임 2연패에 이어 2관왕에 올랐다. 단체전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도입돼 김재범은 한국 유도 역사상 최초 아시안게임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윤태호, 최광현, 곽동한, 김성민도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의 쾌거를 이뤄냈다.
인천=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