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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3자매'가 똘똘 뭉쳤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울기도 했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엄마와 3자매'가 함께 금빛 총성을 울렸다.
곽정혜는 대표팀에 들락날락했다. 2010년 처음으로 대표에 발탁됐다. 2013년까지 있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대표팀 탈락의 아픔도 겪었다. 올해 다시 돌아왔지만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이정은은 올해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둘 다 경험이 부족했다.
이 코치는 이 셋을 하나로 묶기로 했다. 개인전은 각자의 기량에 맡겨야만 했다. 대신 단체전은 노려볼만 했다. 외국 선수들의 경우 본선에서 자신의 성적이 잘 안나올 것 같으면 마음대로 쏘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꽤 많다. 희생정신과 역할 분담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3명의 선수를 하나로 뭉친다면 금메달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3명 모두 각자 개성이 달랐다. 하지만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 구석이 많았다. 곽정혜는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했다. 이정은은 거침없고 도발적이었다. 훈련을 할 때 파이팅도 넘쳤다. 쾌활한 이정은은 언제나 팀에 큰 활력소였다. 김장미는 똘똘했다. 국제대회 경험도 가장 많았다. 조용하고 겸손했다. 눈치도 빨라 언니들을 잘 도왔다.
이 코치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3명 선수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함께 먹고, 같이 자면서 24시간을 붙어 있었다. 곽정혜에게 맏언니의 역할을 맡겼다. 섬세한 구석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돌하루방 수제 제작 장인인 아버지를 닮아 손재주가 좋았다. 취미로 네일 아트를 했다. 틈날때마다 동생들의 손톱을 관리하면서 서로 소통했다. 이정은과 김장미는 서로 친구같이 지냈다. 툭탁거리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보살폈다.
서서히 성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팀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대회에서 설령 자신의 성적이 안 좋더라도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쏘았다. 9월초 그라나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에서 셋은 동메달을 합작했다. 한국 여자 25m 권총이 세계선수권에서 입상한 것은 1998년 제47회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회에서 신은경-부순희-서주형이 단체전 은메달(당시 스포츠권총)을 목에 건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었다. 자신감을 가진 대표팀은 인천에서는 금메달을 따자고 서로 마음을 모았다.
위기도 있었다. 본선 속사는 3개조로 나뉘어 치러진다. 각 국가별로 1명씩 들어간다. 마지막 조에는 곽정혜가 속했다. 중국과 1점차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었다. 곽정혜 뒤로 이정은과 김장미가 와서 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이 코치는 계속 곽정혜와 눈을 마주치며 응원했다. 책임감이 강한 곽정혜는 '엄마와 동생들'의 응원 속에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한국을 금메달로 이끌었다.
이 코치는 "지도자, 선수들간의 신뢰가 이어지다보니 좋은 결과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곽정혜는 "동생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쐈다"고 했다. 이정은은 "우리가 단체전 금메달을 딸 것이라 자신했다"고 즐거워했다. 김장미는 "개인 종목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실력을 더욱 늘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됐다"고 했다.
인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