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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16세의 소년은 어느덧 불혹을 눈앞에 뒀다. 서른 여섯 살이다. 4년 전 밴쿠버는 고통이었다. 올림픽 메달이 잡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눈물이었다. 올림픽은 인연이 아니라고 했다. 그도 그랬다, 이젠 끝이라고.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차디 찬 얼음판과 4년을 또 동고동락했다. 2014년 소치, 그의 마지막 무대, 마지막 레이스만 남았다.
이규혁은 11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500m를 레이스를 마쳤다. 1·2차 레이스 합계 70초65, 18위였다. 동반 출전한 모태범(25·대한항공)이 4위(69초69), 김준호(19·강원체고)가 21위(70초857), 이강석(29·의정부시청)이 22위(70초87)였다. 선전했다.
올림픽에서 이제 단 한 경기가 남았다. 12일 1000m가 기다리고 있다. 500m 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그는 미소를 한껏 머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홀가분하다"였다.
"안되는 줄 알면서도 난 오늘 아침에도 1등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욕심이 나더라. 매번 죄인처럼 다녔다. 올림픽 때 정말 웃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재밌고, 즐겁게 했다." 다들 올림픽을 즐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5000m에서 12위를 차지한 이승훈(26·대한항공)은 "죄송합니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모태범은 아무런 말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규혁만 즐기고 있었다. 그는 "잘 탔다기 보다 그전에는 늘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이제껏 메달 집착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주위에서 다들 즐기고 오라고 하더라. 오늘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 새로운 것을 많이 느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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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놓으니 새 세상이 열렸다. "예전에 잠을 제대로 못잤는데 요즘은 걱정없이 훈련이 끝나면 지쳐 뻗어 잔다. 그런 점들을 배우고 있다. 과거에는 왜 그렇게 못했는지 모르겠다."
후배 모태범과 이승훈을 향해서는 자신감을 잃지마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승훈과 모태범 모두 경기를 마치고 표정이 어둡던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오늘 하루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이라며 "모두 4년을 열심히 준비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올림픽은 인정받는 무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수 인생의 피날레인 1000m, 마지막 메달의 꿈, 포기하지 않았다. "테스트 기록이 좋았다. 메달권을 바라볼 수 있는 기록이었다.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자신감도 있다." 해맑은 미소가 뒤따랐다. 그리고 작전명은 '규혁 스타일'이라고 공개했다. "나는 초반에 승부를 내고 버티는 스타일이다. 체력 소모가 많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버틴다고 버티면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다. 내 스타일로 마지막 경기를 치르겠다."
6차례 올림픽 출전,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이다. 선수들 중에선 최고령이다. 그는 여전히 신선했다. 이규혁의 마지막 도전이 시작된다.
소치(러시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