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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선수]美어학연수 현정화,마흔셋에 만난 큰세상

기사입력 2013-12-25 17:17 | 최종수정 2013-12-26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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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전무(한국마사회 총감독)가 미국 영어연수 시절 노트를 펼쳐보이며, 자신만의 독한 공부법을 설명하고 있다.
안양=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3.12.19/

지난 3월 미국 로스엔젤레스 남가주대(USC) 존 맥케이 센터에서 만난 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전무는 영어 공부에 미쳐 있었다. 이동하는 시간, 수업시간 사이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습관처럼 단어장을 뒤적였다. 매일 하루 5시간 수업을 단 한번도 빼먹지 않았다. 독한 승부욕은 여전했다. 최고의 선수는 최고의 학생이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복식, 1993년 예테보리세계선수권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원조 스포츠 요정' 현 전무는 43세의 나이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 여름 귀국한 현 전무는 달라졌다. 바쁜 업무속에서도 틈틈이 공부 열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19일 '공부하는 지도자' 현 전무를 만났다.

마흔세살, 영어연수가 바꿔놓은 삶

현 전무는 지난해 8월 런던올림픽 직후, 미국 영어연수를 결정했다. 탁구대표 출신인 남편 김석만 전 감독과 딸 서연(12), 아들 원준(10) 등 온가족이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년 전 국제탁구연맹 미디어위원으로 선출됐다. 글로벌 스포츠 리더로서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총감독으로 일해온 한국마사회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USC에서 7개월간 어학연수를 했다. USC 재단 이사인 조양호 대한탁구협회장(한진그룹 회장)이 총장에게 직접 추천서를 써줬다.

세계 1등의 집념은 공부에서도 통했다. 하루 5시간 수업, 일주일에 2~3번 시험을 보는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밤을 새가며 하루에 100개씩 단어를 외웠다. 두번째 학기엔 차석을 했다. 현 전무의 영어연수 노트는 일목요연했다. 연필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정갈한 필체가 인상적이었다. "선수시절 하루도 안빼고 일지를 썼다. 그때부터 메모와 노트정리는 습관이 돼 있다."

9개월여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귀국했다. 한국마사회 탁구단 총감독, 대한탁구협회 전무로서 눈코뜰새없이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공부를 계속할 시간이 있느냐는 질문에 현 전무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틈틈이 영어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최신영화도 볼 수 있고, 자막으로 영어 원문을 확인할 수 있고,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웃었다. 미국 연수때 정리해둔 영어 단어장도 차에 늘 상비한다. 미국 연수를 통해 영어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7개월간의 영어 연수로 실력이 몰라볼 정도로 늘지는 않는다. 가장 큰 수확은 공부습관, '공부하는 방법'을 배워왔다는 점이다."

엘리트 선수가 공부도 잘한다

현 전무는 "엘리트 선수는 공부도 잘한다"고 강조했다. "머리를 쓰지 않고, 운동을 잘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탁구를 잘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를 줄 줄 알아야 한다. 운동도 잘하려면 결국 영리하게 해야 한다. 자기관리, 계획 세우기, 승부욕, 성실성… 공부와 운동에 필요한 덕목은 똑같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공부에 유리한 체력조건도 갖췄다. "체력이 좋아야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학생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한다는 점"이었다. "길에서든, 학교에서든, 해변에서든 어디서나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철인 3종 대회, 10㎞ 마라톤을 뛰고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운동과 공부가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도서관에는 우리나라처럼 조는 학생이 없더라. 그만큼 체력이 좋기 때문인 것같다"고 분석했다.

공부, 시작을 망설이는 후배들에게


현 전무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공부의 필요성을 늘 강조한다.  "우리 선수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영어공부는 꼭 해야 한다." 기회가 된다면 넓은 세상으로의 유학도 권하고 싶다고 했다. 9개월의 미국 생활을 통해 단지 영어만 배운 것이 아니다. 영어 외에도 생활인으로서 느끼고 배운 점이 많다. "넓은 세상, 합리적인 시스템을 배웠다. 나는 43살에 자비로 미국에 갔다. 시간도, 돈도 한정돼 있었다. 굉장히 절약하면서 살았다. 한국에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부족함 없이 살았다. 타이트하게 살면서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일을 하고, 수입이 있다는 게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미국에 가서 가족의 소중함도 절실히 깨달았다. "9개월간 하루도 안빼고 가족들과 딱 붙어지냈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차로 데려다주는 일상이 너무 좋았다. 가족애가 더욱 돈독해졌다"고 했다.

현 전무는 공부를 두려워하거나 망설이는 후배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했다. "마음이 문제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다. 끝없이 도전하면 분명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단언했다. 공부를 늘 해야하는 일,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한번에 쉽게, 뚝딱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10년 후를 꿈꾼다.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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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 탁구단 현정화 총감독과 애제자들. 왼쪽부터 김지선 김민희 박영숙 현 감독,박주현, 이현주, 이소봉, 유소라.안양=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3.12.19/

◇현정화 전 대한탁구협회 전무는 지난해 9월 미국 남가주대학(USC)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43세의 나이가 무색한, 여고생 같은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학생선수를 키우는 USC의 학사 시스템을 보며 "선수시절 우리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더라면…"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LA=전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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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지도자'는 성장하는 선수들에게도 롤모델이 된다. 지난 19일 한국마사회 훈련장인 경기도 안양 농심체육관에서 현 전무가 박영숙 김민희 등 애제자들을 향해 서브를 넣고 있다. 안양=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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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대한탁구협회 전무가 스마트폰으로 공부하는 영화 영어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은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를 보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안양=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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