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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프로연맹, 더이상 쇼는 안 된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06-01 21:02


K-리그의 관계자들이 최근 승부조작으로 위기에 처한 축구계의 현안문제를 논의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16개 구단 선수와 지도자, 프런트 등 1100명이 5월 31일부터 1박2일간 강원도 평창 한화리조트에 모여 워크숍을 했다. 경남 골키퍼 김병지가 선수 대표로 '도박 및 부정행위 근절서약'을 선서를 하고 있다.

평창=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승부조작 사건으로 벼랑끝에 몰린 K-리그가 1박2일간의 워크숍을 통해 신뢰회복을 모색했다. 16개 구단 선수 전원과 코칭스태프, 프런트 11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뼈를 깎는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머리 숙여 사과한 정몽규 프로축구연맹도 전면에 나서 사태 수습을 진두지휘했다. 초기에 우왕좌왕하던 프로연맹 또한 모처럼 K-리그를 이끌어가는 단체로서 제 역할을 했다. 지난해부터 승부조작을 알고도 쉬쉬하다가 화를 키운 프로연맹이 K-리그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직원이 20명 남짓한 소규모 단체인 것을 감안하면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왠지 급조됐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더 이상 쇼는 안 된다

프로연맹은 대한축구협회와 비리근절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자기신고제를 도입하고, 상시 내부 고발 및 자기신고제, 포상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1일부터 13일까지 불법베팅, 승부조작 등에 대한 신고를 받기로 했다. 프로연맹 사무총장에게 위반 사항을 신고할 경우 선별적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자진신고한 관련자는 선처하겠다고 했다. 일명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 제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또 비리 고발을 접수하기로 했다. 사안에 따라 적정한 포상금도 줄 예정이다.

언뜻 합리적이고 획기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성을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로연맹은 수사 의뢰가 필요할 경우 선수들이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통장사본을 제출하도록 했다. 선수들로부터 서약서까지 받았다.

그런데 정말로 이런 조치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 스포츠조선은 사건이 터진 직후인 5월 26일 자에서 승부조작 브로커들이 가담 선수에게 착수금을 내주며 다짐받는 수칙을 공개했다. 첫 번째 항목이 '통장을 만들지 말고 현금으로 보관하라'였다. 또 이들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폰인 대포폰을 사용한다.

프로연맹은 향후 승부조작 관련 혐의 선수를 묵인한 구단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구단 사장과 단장들을 징계하기로 하고 향후 추가 논의를 거쳐 처벌 수위를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구단이 선수의 불법 행위에 대해 어느 선까지 인지하고 있었는지 입증할 방법이 없다.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조차 소환한 선수의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또 처벌을 한다고 해도 모기업 소속인 구단 프런트를 징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럽리그의 경우 승부조작에 연루된 클럽이 2부 리그로 강등된 경우가 있지만 승강제가 없는 K-리그는 그마저 불가능하다.


전북 현대 선수들이 1일 교육장에 들어가기 전 도박 및 부정행위 근절 서약을 하고 있다.

평창=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눈 가리고 아웅식' 처방은 그만


K-리그의 승부조작과 거리를 두고 있던 대한축구협회는 전체 등록 선수가 스포츠토토 베팅을 못하도록 하는 규정 명문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프로축구선수만 베팅에 참가할 수 없게 돼있지만 범위를 확대시켜 내셔널리그, 대학축구, K3-리그 선수는 물론, 초중고등학교 학생까지 베팅을 금지시키겠다는 것이다. K-리그뿐만 아니라 하부리그에도 베팅이 만연하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구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내셔널리그와 K3-리그 선수는 엄연한 성인이다. 축구협회가 합법적인 베팅인 스포츠토토를 막을 권한이 있는 지 논란이 일 수 있다.

또 어린 선수들에게 베팅을 금지시키는 것 또한 어색하다. 축구밖에 모르는 어린 선수들에게 자칫 불필요한 행위를 오히려 알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K-리그 사태를 구경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축구협회가 자신들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것 같다. 축구협회는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릴 게 아니라 더 큰 틀에서 밑그림을 그려야하는 조직이다.


선수대표인 경남 골키퍼 김병지가 '도박 및 부정행위 근절서약서'를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에게 전달하고 있다.

평창=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장기적인 계획을 내놔라

프로연맹이 내놓은 승부조작 방지책을 보면 '추후 논의'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띈다. 차근차근 대책을 논의한다는 게 나쁠 것 없다. 그런데 추후 논의라는 단어 뒤에 민감하거나 껄끄러운 사안을 뒤로 제쳐두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처벌과 징계 사안은 명확한 의지 표명이나 마찬가지다.

승부조작은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기에 적발이 쉽지 않다. 프로연맹과 축구협회가 비리근절대책위원회을 만들기로 했는데 한시적인 기구인지 상설기구인지 내용이 없다. K-리그의 존폐까지 위협할 수 있는 승부조작을 근절하려면 일시적인 조직으로는 안 된다. 일정 규모의 인원, 자금, 권한, 장비가 필요하다. 좀 더 구체성을 갖춘 시스템이 필요하다.

프로연맹과 축구협회는 비리근절대책위원회를 상설화 하고, 하루라도 빨리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경기를 분석해 승부조작 여부를 가릴 전문가를 몇 명이나 영입할 것인지, 예산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그림이 나와야 한다. 한 해에 몇 번이나 선수들을 교육할 것인지, 어떤 프로그램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단편적인 조치는 유통기간이 정해진 통조림과 같다.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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