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차기작 유괴다룬 범죄물등 계획
기사입력 2000년 09월 28일 14시 25분
그가 왔다. 영화감독 박찬욱(37). 고속 흥행질주를 하면서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또 최고흥행작에 도전하고 있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명필름 제작)의 감독으로 우리 앞에 그가 왔다.
개봉 17일 만에 관객 250만명을 동원하며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 영화의 영화의 위력은 거세다. 1일 최다관객동원, 최단기간 서울 최다 관객동원 등 지금까지 세운 기록도 대단하지만, 앞으로 어떤 기록을 남길지 몹시 궁금하다.
그런 위력의 영화를 만든 감독의 모습은 어떨까? 그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말도 아끼는 편이었다. 오후 5시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 점심을 아직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라면을 먹었다. 올 최고흥행영화를 만든 박 감독은 시원하게 라면 한그릇을 비웠다. 소탈해 보였다.
해석에 따라 시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난해 우리 영화계와 관객들은 .쉬리'를 연출한 강제규라는 걸출한 감독을 만났다. 그러나 올해 우리는, 박찬욱이라는 또 한명의 뛰어난 감독을 탄생시켰다. 소문난 영화광이지만 실제로 소설광인 그는, 원작소설을 영화한 이 작품에서 소설광답게 원작을 맛깔스럽고 의미롭게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그동안 그는 형식실험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 왔다. 다소 충돌적이고, 화법에서 연기까지 일반 상업영화의 스타일에서 벗어난 비주류영화 .B무비'를 통해 자신의 영화문법을 보여주었다.
이런 바탕으로 그는, 스타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정공법의 연기와 스토리 라인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와 감동을 느낄수 있는 대중성(보편성) 있는 영화로 .공동경비구역 JSA'를 우리 앞에 선보인 것이다. 그의 의도는 폭발적인 관객들의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주류영화인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썰렁한 농담을 통한 낯설게 만들기 수법과 아이니컬한 상황으로 빚은 풍자, 과거와 현재를 시차 공격하는 장면전환 등으로 재미와 감동을 우려내는데 성공했다. 그 재미와 감동은 어디에서 멈출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때 그의 영화를 사랑했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홈페이지에 "이제 박감독을 대중속으로 돌려드린다"를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한편의 영화로 거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영화 한편은 한 감독을 거장으로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된다.
박찬욱 감독, 그가 인생(영화)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동안의 길은 의미있으나 좀 작은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는 보다 넓고 큰 세계를 위한 큰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 길을 위한 과정에 있는 박찬욱 감독을 만나 영화 이야길 들어봤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태어나서 요즘처럼 인터뷰 많이 한적이 없어요.(웃음) 저희 작품 배우들 만나고 술마시고 그래요. 영화상영 후 잊고 지내던 동창생들로부터 연락도 오고 그래요. (인터뷰 동안 자주 전화가 왔고 그는 꽤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흥행과 감독 인기도 비례관계인데?
▲전 잘 몰라요. 홍상수 감독처럼 자기개성이 강한 감독들이 좋은 것 같아요. 독특한 자기문법을 가진 예술영화감독들이 소중하죠. 글쎄요, 제가 흥행감독이라고 불리는 건 나쁘진 않아요. 상업영화는 상업영화대로 매체의 @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대중성 즉 보편성의 입장에서요. 전 상업영화감독이에요. 그동안 관객이 외면할수 밖에 없는 영화를 만들었지요.
-영화를 하게된 동기는?
▲어릴때 건축학을 하시는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께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얘기를 들려주시곤 했어요. 이후 대학엘 들어가 미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제가 다닌 철학과엔 분석 논리학 중심이어서 뜻대로 안됐어요. 그러다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고 도서관에서 영화서적을 빌려보다 대출카드에 이름이 올라있는 학우들과 서강영화공동체를 만들면서 영화에 빠지게 됐어요.
-고생도 많이 했다는데?
▲고생은요. .비오는날 수채화' 조감독으로 현장에 들어왔어요. 스태프로 일하다, 외화를 수입하는 젊은 친구들이 하는 영화사에서 기획일을 하기도 했어요. 월급장이 생활을 한거지요. 돈 모아지면 영화만들곤 했지요. 운이 좋아서 20대에 데뷔했어요. 영화 글쓰기, 방송에서 영화 소개하기 등 .품팔이 생활'도 했어요. 비참(?) 했어요.(웃음)
-소설읽기를 좋아한다는데?
▲좋아하지요. 장르 구분 않고 좋아해요. 특히 고전, 현대소설 상관없이 영국소설을 좋아해요. 프랑스 작가 발자크도 애독해요. 보르헤스도 좋구요. 영화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소설광이에요. 연극관람하는 거 좋아하구요. 때가 되고 여건이 조성된다면 희곡을 써서 직접 연출도 해보고 싶어요.
-처음 원작을 읽었을때?
▲제작자로부터 간단한 줄거리를 넘겨 받았을 때 선뜻하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원작을 보고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힘들었어요. 여수사관과 이수혁 병장의 성장기, 아버지의 종군일기 등 과거의 이야기에 대한 분량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산재해 있는 과거이야기를 정리하자 풀리기 시작했어요. 영화광인 원작가 박상연씨가 많이 이해를 해줘서 고마웠지요.
-연출을 맡은 걸 놓고 의외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그전에 제 영화는 형식적으로 이상한 작품들이었어요(웃음). 비주류 영화로 불리는 할리우드의 .B무비', 그런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했어요, 좀 엉성해도 그게 더 재미있는 영화말이에요. 엉뚱하기도 하지요. 스타일이 전혀 없는, 흥행도 안되고 비평적으로도 좋은 소리 못듣고 일부 마니아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었지요.
-공동경비구역에서는?
▲표현양식보다 관객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 해보는 큰 영화라, 예전보다 불편했지요. 제작비가 뭐낙 많이 든 작품이라 본전은 해야할텐데라는 압박감도 조금은 있었구요.(웃음) 그전에 제영화를 아껴주셨던 분들은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은 인터넷에 이제 저를 대중속으로 떠나 보낸다는 메시지까지 남겼더군요.
-.B 무비'를 지향하다 상업영화와 손잡은 것은?
▲저도 상업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하려고 했으나 실패했을 뿐이죠. 제 딴에는 관객들이 좋아할줄 알고 비주류 영화를 만든거에요. 그런데 오히려 관객을 쫓아버리는 영화가 된 것 같아요. 상업@예술, 재미@감동 등 어려운 숙제들이 맣아요. 감독과 제작자 사이의 긴장이 좋은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공동경비구역의 아쉬운 점은?
▲비밀인데요.(웃음) 너무나 많지요. 작품을 만들어놓고 나면, 누구나 그럴거에요. 모른 채 가면 그냥 넘어가는 점도 있지요. 이번 영화는 결말 문제였지요. 어떻게 이영화를 끝맺을 것인가하는 점이었지요. 현재 극장에서 선보인 주인공 이수혁 병장의 자살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처음 구상은?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이 자살을 하지 않고 병원으로 후송되죠. 5년 후 직장인이 된 그가 여행가방을 들고 비행기를 타지요. 비행기안에서 서양인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5년만에 헤어진 친구를 만나러 아프리카로 간다구요. 그곳에서 군사교관으로 투입된 북한병사 오경필(송강호)을 만나러가는, 그런 구상이었어요.
-엄창난 관객동원인데, 얼마나 들것같나?
▲원래 전 그런거 못맞춰요. 서울 150만명 정도는 통계적으로 산출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솔직히 제 유일한 관심사는 본전을 할 수 있는 서울 50만명이었어요. 넘었으니까 됐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관객들이 너무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영향을 받은 영화인은?
▲김기영 감독님은 일찌감치 존경했어요. 혼자서 좋아 떠들고 다녔지요. 임권택감독(깃발없는 기수, 우상의 눈물), 이두용감독님의 특정시기 영화를 매우 감명깊게 보고 배웠지요. 요즘은 .반칙왕'의 김지운 감독의 작품과 유승완 봉준호 곽경택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요.
-앞으로의 계획은?
▲영화 시나리오 써 놓은 게 여러편 있어요. 그중에 골라서 하려고 해요. 유괴를 다룬 범죄영화, 사이버 캐릭터와 인간 사이의 감동을 그린 미래영화도 생각중이요. 그리고 인혁당 사건을 다룬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 박찬욱 감독은? 1963년 8월 23일 서울 출생. 서강대 철학과 졸업. 1992년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 데뷔. 서강영화공동체 창단 멤버. 시나리오로 .야간 비행' .아나키스트', 영화로는 .3인조' .심판'에 이어 블록버스터 한국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명필름 제작)를 연출, 스타감독으로 새로운 위상을 세움.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저서에는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평론집)이 있음.
[박용재 문화부장 easts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