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만화까지 한국인 멸시
기사입력 2000년 04월 18일 14시 43분
현재 일본에는 28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그 중 한국인 노동자는 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학생비자, 혹은 이런저런 위장비자를 받아 서비스업계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포함하면 그 수는 실로 엄청나다.
15일간의 관광비자를 받아 일본에 온 후 그대로 주저앉은 불법체류자의 경우 나이든 사람들은 공사현장이나 지방 제조업계 등에서 단순노동자로 일하고 젊은이들은 유흥업소 등에서 서비스를 하는 이들이 많다.
"오늘 아침 상사와 업무상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사가 `그러니까 너는 제 3국인이다, 당장 그만둬'라고 말해서 참 슬펐습니다."
이 말은 방글라데시인 노동자가 지난 13일 불법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아시안 피플스 프렌드십 소사이어티'(APFS)의 회원 30여명과 함께 도청을 방문하여 항의집회를 가진 후 기자회견에서 밝힌 말이다. 벌써부터 일반인들도 이시하라의 `제3국인' 발언을 냉큼 받아 차별적인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시하라 도지사는 계속해서 강경한 태도로 `내가 뭘 잘못했느냐, 자위대는 분명 일본의 군대다, 외국인들에 의해 폭동이 일어나면 일본의 군대인 자위대가 출동하여 폭도들을 진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국내외적인 거센 항의에 직면해 마침내 1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재일동포와 재일 아시아 노동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런가하면 일본의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JAWOC)가 발행하는 `JAWOC NEWS' 4월호에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만화가 실렸다. `재미있는 한국인'의 저자이면서 친한파 만화가로 알려진 고 신타로씨가 그린 한국말을 배우는 코너. 네 커트의 만화에 한국인이 토끼, 개, 돼지로 등장하다가 마지막 커트에서는 늑대로 돌변하여 일본 개에게 부엌칼을 들이밀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 때 일본 개는 부엌칼이 무서워 두 손을 번쩍 들고 저녁 인사인 `곰방와'를 외친다. 그림으로만 보면 부엌칼을 든 한국 늑대는 영락없는 강도다.
한편 이 만화를 본 오사카시의 월드컵 담당자는 깜짝 놀라 도쿄 본사에 연락을 하고 인쇄물 9000부를 전량 회수했다. 하지만 이 만화는 이시하라 도지사의 발언과 맞물려 종합일간지에 일제히 게재되는 바람에 일반인들까지도 알게 됐다.
"칼을 그린 것은 그냥 재미있으라고 그런 거예요. 한국인들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더 이상 한국인과 만날 수 없어요. 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과할 생각도 없습니다."
내가 14일 오전 고 신타로씨 사무실에 전화를 걸자마자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쏟아 놓은 그의 말이다. 내가 전화를 걸기 전 이미 상당히 많은 항의전화를 받은 듯 그의 목소리는 매우 흥분해서 떨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상처받은 것은 오히려 자신이라고 항변했다.
원래 그는 한국노래가 좋아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말까지 배운 친한파 일본인이다. 한국에 대한 책도 여러권 냈고 나하고는 안면을 튼지 벌서 13년이 넘는다. 하지만 이번 만화의 경우는 13년의 우정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오는 2002년 월드컵대회 때까지 연재하기로 했던 만화가 이번 4월호 첫 회부터 문제가 되는 바람에 연재가 전면적으로 중단됐고, 또한 외무성 산하 일한문화교류위원회 위원직에서도 파면을 당했다고 한다. 고 신타로씨는 만화연재 중단으로 경제적인 손실과 함께 여기저기서 항의전화가 와 자신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두절미하고 그것은 고 신타로씨의 자업자득. 정말 재미있게 그리고 싶었다면 부엌칼 대신 축구공을 그려 넣었으면 오히려 월드컵의 이미지에 훨씬 더 어울렸을 것이다. 아무튼 일본인들의 내면속에 잠재돼 있는 아시아인에 대한 멸시감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고개를 쳐들지 모른다. 친한파이든 국수파이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같은 우려를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이시하라 도지사는 자신의 사과발언을 뒤엎었다. `타임'지와 가진 인터뷰(17일 발행 아시아판)에서 다음과 같이 경악스러운 발언을 한 것이다.
"내 발언 중 제 3국인이나 외국인이라는 표현은 일본패전 후 조선반도나 대만인을 가리키는 것이 맞다. 당시 일본에 있던 조선인, 대만인들은 강도질을 하고 때로는 일본인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감이 `제 3국인'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