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도약 (5)
기사입력 2000년 04월 17일 14시 29분
아래층의 국내영업부 회의실로 들어선 오성호와 차만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회의실 안에 이대진과 마주앉은 국내영업부 7팀장과는 얼굴만 알 뿐 인사도 나누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대진이 7팀장을 소개시킨 다음 대뜸 본론을 꺼냈다.
"우리가 7팀의 경찰청 오더를 인수했다. 잘들어."
그리고는 박용성을 보았다.
"박과장이 설명해 주시지요."
국내팀 박용성 과장은 30대 후반으로 이대진보다 한참이나 선배였다. 서류를 한부씩 나눠준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경찰은 전자장비 대부분을 신형으로 교체합니다. 모두 42종에 추정 금액만 310억 가까원 대형 오더지요."
서류에서 시선을 뗀 그가 수출부 특수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 제품은 품질 가격면에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명진전자는 그동안 경찰과 10년 가깝게 오더 관계를 유지해 왔지요. 그래서 구매자 측에서는 명진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습니다."
이대진은 아까부터 박용성의 분위기를 읽고 있었다. 수출부 특수팀으로 오더를 인계하게 된 것에 조금도 거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책임을 넘기게 되어서 안도하고 있다. 박용성이 이대진을 보았다.
"국내영업은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온갖 인연으로 엮어져 있지요. 수출영업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끈기가 부족했고 인연도 적다는 말인데 왜 그렇게 됐지요?"
이대진이 웃음띤 얼굴로 물었지만 박용백의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7팀장이 되기 전부터 명진전자는 경찰청 오더를 하고 있었어요. 나는 작년에 7팀장을 맡았단 말이요."
그러자 외면한 오성호가 혀를 찼고 차만석은 헛기침을 했다. 만일 그들이 이대진의 앞에서 그런 핑계를 댔다가는 죽었을 것이다. 이대진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군요. 그럼 명진전자의 담당부서는 국내영업부 S팀입니까?"
"그쪽도 특수팀이요, 스페셜팀의 약자지."
다시 머리를 끄덕인 이대진이 서류를 보는 시늉을 했다.
"팀장 이름이 뭡니까?"
"김정태라고 국내영업의 도사지요."
"고향이 어디고 학교는 어디 나왔지요?"
"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박용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곧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것까지 조사할 시간이 없어요."
"그럼 뭘 조사 하시는데요?"
마침내 오성호가 정색하고 물었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있었는데 도전적이었다.
"경쟁자에 대한 조사가 우선 아닙니까?"
"그만해."
오성호에게 눈을 부릅떠 보인 이대진이 박용백을 향해 몸을 틀고는 웃었다.
"고맙습니다. 과장님, 앞으로 자주 들릴 테니까 자문을 부탁드립니다."
"아아, 물론."
건성으로 대답한 박용백의 시선은 오성호의 옆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굴을 굳히고 있는 것이 화를 참고 있는 것이다.
위층의 수출부 회의실로 옮겨왔을 때 오성호가 분통을 터뜨렸다.
"저런 새끼가 팀장 자리를 차고 있다니 국내 영업부 실적이 바닥을 기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야단났는데요."
차만석은 현실적이었다. 그가 찌푸린 얼굴로 이대진을 보았다.
"싹수가 노랗습니다. 백실장이 우리를 죽이려고 이 일을 맡긴 것 같은데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