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남자] 도약 (4)

기사입력 2000년 04월 16일 15시 14분


이대진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오성호와 차만석이 돌아앉았다. 둘다 눈이 둥그레져 있었다.

"보스 10시 30분에 기획실장실로 올라오랍니다."

목소리를 죽인 오성호가 물었다.

"무슨 일일까요?"

"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하자는 거겠지."

"에이 제기."

눈을 치켜뜬 오성호가 흘겨보았다.

"보스, 억지로 여유 부리지 마시오. 백경일이 후속타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틀림없어요."

차만석이 거들었다.

"그냥 물러날 백실장이 아닙니다."

이대진은 그들에게도 백경일과 의형제를 맺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했다면 만세를 불러줄 것이지만 전혀 득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백경일도 강조했지만 이런 관계는 철저히 비밀을 지켜야 서로에게 이롭다.

차만석이 이대진의 책상 위에 두툼한 화일을 올려놓았다.

"보스, 현재 진행 중인 오더 화일입니다. 참고로 가져가십시오."

이번에는 오성호가 서류 한장을 내밀었다.

"문제점을 요약해 놓았습니다. 어차피 깔려고 마음 먹었다면 깨져야겠지만 대답은 제대로 하셔야죠."

"고맙다."

화일을 챙긴 이대진이 시계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그의 모습을 오성호와 차만석이 마치 사지로 뛰어드는 필마단기의 병사처럼 바라보았다.

"어, 거기 앉아."

실장실로 들어섰을 때 백경일이 웃음띤 얼굴로 이대진을 맞았다. 그리고 인터폰을 누르더니 지시했다.

"내 방에 전화도 넣지말어."

그러더니 앞에 앉은 이대진을 보았다. 부드러운 시선이다.

"이봐, 내가 네 팀에 심어놓은 차만석이는 네가 심복으로 만들어 버렸지?"

"예. 실장님."

"둘 뿐이다. 형님이라고 불러."

"예. 형님."

"어떻게 회유한거냐? 돈이냐?"

"아닙니다. 팀 분위기에 끌려든데다 일할 목표를 주었습니다. 물론 돈도 공평하게 배분했구요."

"그 망할 놈은 나한테 거짓보고만 했어. 아주 시치미를 떼고 말이다."

그러나 백경일은 웃는 얼굴이었다.

"너하고의 머리 싸움에서 내가 졌어."

"하지만 저는 이제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시킬 일이 있어. 네 팀이 할 일이다."

어느덧 백경일이 정색했다.

"국내영업본부에서 경찰용 전자장비 입찰에 들어갔는데 명진전자하고 우리 둘 만이 남았다. 구매액이 300억이 넘는 빅 오더야."

긴장한 이대진이 머리만 끄덕였다. 이미 국내영업본부 쪽에서 들은 것이다. 석달전 부터 치열한 경합을 벌렸던 입찰은 결국 두군데로 압축된 것이다. 백경일이 말을 이었다.

"명진전자는 사활을 걸고 있어. 대부분의 장치가 가격과 성능이 비슷한터라 로비력에 승패가 결정된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정부 오더라 정부측에서는 강력하게 로비활동을 막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다가는 당해."

상체를 굽힌 백경일이 이대진을 보았다.

"너희 팀이 이 일을 맡아라. 내가 국내 영업본부측에다 지시를 할테니까 국내영업 7팀장한테서 업무를 인수 받도록."

그리고는 그가 소파에 등을 붙였다.

"국내팀은 순발력이 부족해. 네가 적격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