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박창수 '한평생 사랑하며 산다는 것'
기사입력 2000년 04월 13일 14시 09분
지난 주 4월 5일은 `한식'이라서 그동안 마음만 있어도 가보지 못한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뵈었다.
모처럼 만에 어머니의 양지바른 산소 옆에 누워있다보니 주위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개나리 , 진달래의 모습에 문득 그 옛날 어머니 살아계실 적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인데도 불구하고 치매와 당뇨,고혈압 간경화 등의 온갖 만성질환을 다 갖고 계시던 분으로 마지막 10여년동안은 거동도 못하시고 누워만 계셨던 분이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회색의 콘크리트 사각벽인 아파트에서 사시다보니 계절의 변화조차 도통 느낄수 없는 그런 나날을 보내고 계셨다.
어느날 어머니를 뵈러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아파트 베란다에 개나리, 진달래 꽃잎들이 봄내음의 향기와 함께 부드러운 솜이불처럼 깔려있었다. 줄곧 자리에 누워 계신 까닭에 봄을 느끼실 수도, 볼 수도 없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께서 멀리까지 가셔서 개나리, 진달래꽃을 소복이 따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와 깜짝이벤트를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자식들도 생각지 못한 어머니를 위한 최고의 봄맞이를 어머니의 남편이 해내신 거였다.
어머니는 베란다에 기대앉으셔서는 개나리, 진달래 꽃잎을 손으로 만져 보기도 하고, 얼굴에 비벼도 보며 봄의 정취와 지나간 아버지와의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시곤 했다.
평소 아버지는 출근하시기 전에 매일 약 봉투를 챙기셨는데, 어머니가 착각하실까봐 약 봉투 위에 펜으로 아침, 점심, 저녁이란 단어를 큼직막하게 써 놓고 나가시면 시간에 따라서 약을 드셨는데 항상 옆에서 보면서 병든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의 다정다감한 배려에 한없이 감탄하면서 환자를 보는 나의 마음가짐에 큰 도움이 된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환자를 보면서 병든 아내를 데리고 오는 남편들을 보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진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지금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참 유머스러운 분이셨는데 당뇨가 심해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면서도 "에이, 먹고나 죽자" 하시면서 아버지 몰래 초코렛을 즐겨 드셨고 말리는 아버지한테 "당신도 하나 먹어요！" 하면서 초콜렛을 건네는 그런 사랑스런 아내 였다.
그런 아내의 철없는 모습을 보고 씁쓸해 웃어 보이던 아버지의 마음을 세월이 지나서야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하여튼 나는 그런 어머니의 성격을 닮았는지 일요일에는 교회나 가서 "나좀 잘살게 해주세요"라고 내인생을 좀 빌어볼려다가도 `술마귀' 나 `놀자마귀'들인 친구들에게 전화만 오면 하나님한테 갈 생각은 사라지고 "에이, 일요일인데 놀러나 가자…."
최근 신문지상에 황혼 이혼이 늘어난다는 기사를 보고 각자 사는 인생관은 다 다르겠지만 `부부애'라는 단어를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한 평생 아무일 없이 사랑하며 산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의 부모님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박창수 안과 원장 www.lasikclub.co.kr (02)3482-4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