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이러쿵 저러쿵] 충무로 의리파 정우성
기사입력 2000년 04월 12일 14시 21분
제작자와 배우의 관계는 사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사이다.
감독이야 "내 작품은 이렇고, 이런저런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작품과 연기에 관한 이야기만 하면 되지만, 제작자의 경우는 `돈' 얘기를 꺼내야 하기 때문에 배우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은 것.
요즘엔 제작자와 배우 사이가 단순히 한 작품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 사람을 믿고 작품을 같이 하는 경우도 많은 것.
물론 이런 관계에 `남녀상열지사'가 개입된다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겠지만 이 어찌 나쁘다고만 하겠는가? 다같이 피가 끓는 청춘들인걸.
각설하고, 제작자와 배우의 끈끈한 유대관계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정우성과 우노 필름 차승재 대표의 경우다. 정우성이야 매니저인 정훈탁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계약서가 어디 있을 거예요"라고 할 정도의 의리파. 차승재 대표 또한 충무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따르는 스타일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정우성이 출연한 영화 `본투킬' 개봉 날. 남의 제작사 영화 개봉 날까지 찾아간 차대표의 정성으로, 두 사람은 `비트'에서 한 배를 타게 된다. `비트'의 흥행은 둘 모두의 입지를 굳혀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차대표는 `태양은 없다'를 차기작으로 준비하면서 일찌감치 정우성을 주연배우로 낙점한 상태. 하지만 시나리오 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차대표는 조바심을 냈다.
아무 소리 안하고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정우성의 얼굴 보기가 민망했던 것. 당시 정우성은 드라마 쪽에서 백지수표까지 싸들고 와 사인하자고 아우성 했을 정도. 그런데 정우성은 오히려 차 대표에게 술까지 사주며 위로했다.(물론 정우성이 산다고 했지만, 술값은 차대표가 냈다.)
"형, 너무 조급하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요. 나야 형 믿고 책이나 읽으면서 몸이나 만들고 있을 게."
이러니 안 예쁠 수가 있겠는가.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태양은 없다'가 완벽한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는데, 그 이유는 차 대표가 정우성을 너무 기다리게 하기가 미안해서였다.
의리는 남자만 있는 게 아니다.
얼마 전 충무로의 빵빵한 여성 제작자 S씨의 시계가 명품 브랜드 V로 바뀌었다. 아무리 히트작을 많이 낸 제작자라도 손쉽게 손이 가지 않는 고가의 제품.
S는 누가 줬는지는 한사코 밝힐 수 없다면서도 연신 싱글벙글하는데 아마도 S를 통해 영화에 처음 데뷔했고, 그 영화로 인해 스타덤에 오른 여배우 J가 선물하지 않았겠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충무로 제작자들끼리 만나면 하는 인사가 "어, 시계가 그대로네. 배우들한테 인기가 없는 모양이지"다.
글:이문성[영화기획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