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앞둔 커플 필독서 日요시모토 '허니문'
기사입력 2000년 04월 09일 15시 03분
결혼식 못지않게 상업적으로 탈바꿈해 버린 게 우리 시대의 허니문. 값비싼 패키지 상품에 묶인 신혼 부부는 쫓기듯 관광지를 훑어보고 전투치르듯 레포츠를 경험하며 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휘발시킨다.
민음사에서 펴낸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소설 `허니문'은 이 봄 결혼과 허니문을 앞둔 남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 상처를 안고 청춘을 보낸 남녀 주인공이 허니문을 통해 고통을 치유하고 삶의 아름다움에 눈뜨는 과정이 담백한 일본 우동처럼 요리돼 있다.
일곱살에 이웃으로 만난 마나카와 히로시는 깊게 베인 상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잘 어울리는 한쌍. 마나카는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새엄마와 살고 있고 히로시는 부모가 사교(邪敎)에 빠져 집을 나가는 바람에 할아버지와 지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꼽친구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마나카가 열여덟살 되던 해 히로시의 할아버지가 죽는다. 유품을 정리하던 히로시는 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잡아먹는 끔찍한 사교 교단의 간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히로시를 위로하기 위해 마나카는 친엄마가 살고 있는 호주에서의 허니문을 제안하고 둘은 바다 속에서 뛰노는 돌고래를 바라다보며 삶의 진실을 깨닫기에 이른다.
"우리는 누구든, 저 멀리서 보면 가혹하고 차갑고 거친 바다 속, 회색 파도에 휩싸여, 헤엄치고, 놀다가, 마침내 없어져 이 거대한 세계 어딘가로 녹아든다. 아까 바람을 맞으며 회색 바다에서 노니는 돌고래를 바라본 우리들이 숨을 삼켰던 것처럼, 우리들의 생 역시, 분명, 한없이 아름다운 것이리라."
독신주의 신봉자인 바나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일까. 그녀가 그린 이들의 허니문 스케치는 놀라울만치 감동적이다.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티격태격하는 예비 신랑신부가 있다면 동행해보자. 상대를 위해 우동을 끓이고, 풀꽃다발을 만드는 어린 연인들의 허니문 길에.
◇요시모토 바나나는 누구?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 문단을 양분하는 여성 소설가. 88년 `키친'으로 데뷔, 일본에서만 250만부를 판매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국내 팬도 많아 `키친'은 5만부, `도마뱀' `하치의 마지막 연인'은 각각 1만부씩 찍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여성 독자층에게 특히 어필하는 바나나의 작품은 상처를 안고 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정색하지 않고 가볍게 풀어나가는 게 특징. 멜로드라마 보듯 쓱쓱 넘길 수 있는 가벼운 문체,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는 바나나 소설 최고의 미덕으로 손꼽힌다.
[정경희 기자 gumn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