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조영남 '내 인생 은인 봉두완 형님'
기사입력 2000년 04월 07일 14시 45분
`아! 저 사람!'
아침에 눈을 떠 TV리모콘을 누르자 마자 화면에 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전 국회의원, 현 인기 라디오 앵커 봉두완씨였다. 그 옆에는 큰 따님도 앉아 있었다.
김연주 임백천 그리고 박철이 진행하는 KBS 2TV 아침토크프로 `행복채널'에 막 출연해 계신 중이었다.
나는 채널을 고정하고 끝까지 보았다. 다른 때같으면 이리저리 리모콘을 못살게 누르는데 이날은 달랐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나로선 기막힌 사정이었다.
2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한답시고 껍쭉대며 한국을 왔다갔다 할 때였다.
그때는 `딜라일라'라는 노래로 대히트를 치고 군대에 갔다가 제대해서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니까 가수로서의 내 인기도 캡이었다. 게다가 나는 미모의 여자 탤런트와 막 결혼해서 그야말로 인기 정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인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거기엔 원인이 있었다.
조영남은 미국에 살면서 돈만 떨어지면 귀국해서 콘서트를 열어 돈 챙겨 미국으로 가져가 쓰는 가수로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어디가서 아니라고 하소연 할 곳도 없었고 변명을 할만한 건덕지도 없었다. 그냥 내 인기는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아! 나의 가수인생이 여기서 끝나는 구나!' 싶었다.
빨리 얘기하자. 그런 나쁜 여론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 바로 봉두완씨였다. 그때 봉씨는 모 TV에서 매일저녁 뉴스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서울 콘서트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내린 날 저녁에 봉씨가 그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국민 여러분! 돈 떨어지면 귀국해서 돈 벌어가는 가수가 오늘 또 왔습니다".
대충 이런식으로 나의 귀국을 저녁뉴스에 올렸던 것이다.
가요생활 30년에 최초로 겪어야 했던 시련이었다. 그 뒤로는 두차례에 걸친 이혼사건 말고는 그만한 규모의 시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봉씨의 멘트가 최초이자 최고로 컸던 시련인 셈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를 망가뜨린 사람'이라는 꽁한 생각은 다 없어지고 나는 단지 TV화면을 통해서 나와 그런 이상한 인연을 가진 사람이(물론 일방적인 인연이지만)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게 궁금해서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나는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비록 TV토크쇼를 통해서 알게 됐지만 나나 임백천같은 사람과는 생판 다른 엄청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딸 유치원 졸업식에 참석한 아버지, 딸 동창회에 대신 참석해 주는 아버지, 구구절절이 심금을 울리는 큰형님같은 사람이었다.
어쨌던 나는 봉형님의 지적에 대오각성해서 미국에 영구히 거주할 수 있는 권리(영주권)를 즉시 포기하고 그후 돈벌어 미국가서 쓰는 행위도 즉시 중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봉형님은 나의 은인이었다. 고마웠습니다. 봉큰형님!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