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특파원수첩] 과감한 체인지업 새로운 승부구로
기사입력 2000년 04월 07일 14시 22분
몬트리올에 머문지 4일. 햇빛을 한번도 볼 수 없었다. 계속 흐리고 비와 눈이 번갈아 내렸다. 계절이 거꾸로 가는지 6일부터는 강풍이 불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플로리다의 섭씨 30도를 넘나드는 작열하는 태양속에서 훈련을 하던 박찬호(27)도 두터운 가죽 잠바에 겨울 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러나 박찬호는 아직도 매서운 한풍이 기세를 올리는 이곳 몬트리올에서 20승의 서광을 발견했다. 올시즌을 앞두고 그의 화두였던 `체인지업'. 강속구 투수에게는 필수적인 구질이며, 지난 몇년간 계속 완벽하게 익히지 못하고 끙끙대던 체인지업을 5일 몬트리올전에서는 능숙하게 그리고 자주 구사했다. 지난 시즌까지는 한 게임에 많아야 3∼4개를 던지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날은 10개 이상을 던졌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볼카운트에서 뒤지고, 주자가 나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체인지업으로 범타를 유도했다는 점이다.
사실 박찬호의 체인지업은 `불펜용으로는 최고'라는 평을 오래전부터 들었다. 연습 투구때는 기가 막힌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막상 실전 마운드에 오르면 그것이 되질 않았다. 경험과 자신감의 문제.
박찬호의 투구 패턴을 되새겨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14승을 거둔 97년에는 승부구가 거의 강속구였다. 15승을 거둔 98년에는 낙차 큰 커브를 승부구로 종종 구사, 큰 재미를 봤다. 지난시즌에는 체인지업까지 가미하려 했지만 3가지 구질이 모두 뒤얽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컴퓨터 제구력'의 그렉 매덕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구질을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있게 스트라이크로 던질 수 있으면 만사 OK"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구질을 완성한다해도 자신감과 경험이 뒷받침되야 가능한 일.
어쩌면 박찬호에게 아직 20승 기대는 성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찬호가 체인지업까지 승부구로 구사한다면 전혀 이야기가 틀려진다. 타자들은 설 곳이 없어진다. 빠른 공을 잘치는 타자들이 즐비한 막강한 타선이긴 하지만 10일 뉴욕 메츠와의 일전이 기대된다.
[몬트리올(캐나다)＝민훈기 특파원 hkmin＠earthlink.net]
